이란이 미국 건국 250주년 기념일인 4일(현지시간)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1939~2026) 전 최고지도자의 국가장(國家葬)을 시작한다. 미국의 상징적인 국경일에 맞춰 장례를 치르는 것은 미국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일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장례는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 체제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국가 행사이기도 하다. 미국과의 종전 협상 중 모즈타바의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정부는 4~9일 테헤란과 곰, 이라크 나자프·카르발라, 마슈하드를 잇는 장례 행렬을 위해 혁명수비대(IRGC)와 친정부 민병대 바시즈를 총동원하고 있다. 테헤란 고속도로는 임시 주차장으로 바뀌고 학교·체육관·모스크·대학은 조문객 숙소로 개방된다. 주요 도시 출입은 통제되고 일부 항공편 운항도 중단될 예정이다. 당국은 테헤란에만 최대 2000만명, 최종 안장지인 마슈하드까지 포함하면 모두 1800만~3500만명이 장례 일정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3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모살라 기도원에서 열린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작별식에서 이란군 병사가 지난 2월 미·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하메네이와 가족들의 관 옆을 지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메네이는 지난 2월 28일 미·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지만 장례는 4개월 넘게 미뤄졌다. 보안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또 대규모 국가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알리 아크바르 푸르잠시디안 내무부 치안담당 차관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30여 개국이 고위급 대표단 파견을 요청했고, 최근 상황 속에서 국내외 행사를 충분히 준비하기 위해 장례 일정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300명 이상의 외신 기자도 취재 등록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
3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그랜드 모살라에서 열린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추모 행사에서 여성 조문객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으로 지난 2월 28일 숨진 하메네이와 그의 가족들의 관 앞을 지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모살라 대광장 앞에서 혁명수비대원들과 성직자들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을 앞두고 애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고별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이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메네이 장례는 테헤란 모살라 기도단지에서 사흘간 일반 조문을 받은 뒤 수도를 가로지르는 장례 행렬을 거쳐 시아파 성지인 이라크 나자프와 카르발라를 방문하고, 이후 곰을 거쳐 고향인 마슈하드의 이맘 레자 영묘에 안장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7일엔 곰에서 고위 시아파 성직자가 집전하는 장례 기도와 운구 행렬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후 시아파 성지인 이라크 나자프와 카르발라를 거쳐 고향인 마슈하드의 이맘 레자 영묘에 안장된다. 바시즈가 조문객 수송과 숙박을 총괄하고, IRGC는 주요 도시의 경호와 군중 통제를 맡는다.
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이미지와 '이란의 순교자'라는 문구가 표시된 디지털 화면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 앞을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테헤란의 22개 행정구역은 전국 31개 주에서 올라오는 조문객을 분산 수용한다. 고속도로는 임시 주차장으로, 학교·체육관·모스크·대학은 숙소로 활용된다. 이란인터내셔널이 입수한 영상에는 정부가 조성한 대형 텐트가 테헤란 시내 공원과 공공장소 곳곳에 설치된 모습도 담겼다. 일부 항공편 운항도 중단될 전망이다. 압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도 최근 이라크를 찾아 현지 당국과 국경을 넘는 장례 행렬 동선을 직접 조율했다. 관 이동을 위해 헬기까지 동원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이라크 국회의원 120명은 하메네이의 시신을 이라크로 옮겨 장례 행렬을 진행해 달라는 공식 요청서를 전달했다고 이란인터내셔널이 전했다.
이 때문에 “전례 없는 보안 작전”(이란인터내셔널), “이란 역사상 가장 큰 국가 장례식”(유로뉴스 페르시아)이란 평가가 나온다.
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한 도로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당국이 경호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과거 장례식 참사의 기억이 있다. 1989년 이슬람공화국 창시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0~1989)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에서는 수십만 명의 군중이 운구 차량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관이 훼손되고 수의가 찢어지는 혼란이 벌어졌다. 결국 당국은 시신을 헬기로 긴급 이송한 뒤 다시 수의를 입혀 다음 날 장례를 치렀다. 당시 정확한 사망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미군 공습으로 사망한 거셈 솔레이마니(1957~2020) 전 IRGC 쿠드스군 사령관의 장례식에서도 고향 케르만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최소 56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이 다치면서 장례 일정이 연기됐다.
1989년 6월 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베헤슈트 자흐라 묘지에서 열린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의 안장식에 참석한 인파. AFP=연합뉴스
1989년 6월 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베헤슈트 자흐라 묘지에서 거행되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의 안장식에서 조문객들이 그의 시신이 담긴 관에 손을 대려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장례식을 앞두고 정권 내부 균열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하메네이가 숨진 테헤란 현장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 라바그 케슈바르두스트가 강경파 시위대의 점거 이후 결국 폐쇄됐다는 현지 보도까지 나온 것이다. 당시 흰 수의를 입은 강경파 활동가들은 “살해된 지도자의 피를 갚아야 한다”며 사흘 동안 농성을 벌였고, 미국과의 협상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다. 운영진은 추모 공간이 기도와 애도의 장소에서 시위대가 모이는 공간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폐쇄를 결정했다.
이란인터내셔널 등 현지 매체는 이를 “두 충성파 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보고 있다. 이란 정부는 이번 장례를 모즈타바 하메네이 체제 출범 이후 첫 국가행사이자 국민 통합과 권력 승계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만들려 한다. 반면 초강경파는 하메네이의 죽음을 미국과의 협상 중단과 보복을 요구하는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2일 장례를 앞두고 발표한 메시지에서 “하메네이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연대와 단결의 새로운 시작”이라며 “대규모 장례 행렬은 테러와 폭력에 맞선 이란 국민의 단결을 세계에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월 2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한 이란 여성이 (배경 왼쪽부터)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그리고 현 최고지도자인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초상이 담긴 현수막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모즈타바 최고지도자가 장례식에 등장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는 이스라엘의 표적 공습 이후 지금까지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설과 건강 이상설 등이 제기됐다.
다만 장례식의 규모와 별개로, 이란의 국제적 고립은 여전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요 강대국 가운데 정상급 인사를 보내는 국가가 없다”(폭스뉴스)는 이유에서다. 중국과 인도는 장관급 이하 대표단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등 주변국은 상대적으로 높은 급의 대표단을 파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