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32도, 안은 24도. 그런데, 실내 온도계 앱으로 재보니 실제 19.7도. 10분만 머무르면 잘 모른다. 15분 지나면 오싹하고, 20분 되면 한기가 든다. 30분이면 소름 돋는다. 그리고 주변 풍경은 시속 110㎞에 맞춰 시원하게 바뀐다. 산과 강과 섬. 물과 들과 골 ….
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321907호. 방 호수 같은 이 번호를 분해하면 이런 뜻이다. ‘광역철도 차량(3)이, 경의·중앙선(21)을 달리고 있고, 나는 마지막 칸(9)에 앉았는데, 이 열차는 편성이 07번이더라’.
그러니까, 지난달 30일. 우리는 최고 시속 110㎞로 달리는 경의·중앙선 전철 맨 뒤 칸에서, 체온 36.5도의 절반을 조금 넘는 냉기, 아니 한기를 즐기고 있었다. 용산에서 용문까지 3000원도 안 되는 차비로. 이른바 ‘수도권 광역전철 1393㎞ 여행’이다.
시장조사업체 피엠아이에 따르면, 국민 74.2%가 올해 여름휴가로 국내 여행을 꼽고 있다. 해외여행은 2.8%에 그친다. 비용 부담이 가장 큰 이유다. ‘수도권 광역전철 여행’은 당일치기, 즉 틈새 여행이다. 여름에 한정하지 않는다. 장거리 운전과 열차표 예매의 부담이 없다. 교통비는 왕복 1만원이면 족하다. 현지에서 버스 환승 할인도 된다. 게다가 더위와는 담쌓았다. 추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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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북한강-양수역(경의·중앙선)
“강이다!” 양수역 앞. 두물머리와 세미원이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이 만나 빚은 섬 같은 땅. 강에서 얕게 올라온 둔덕이 나지막한 평지를 이뤘다. 사람 여럿이 밟고 있으면 쑥 내려앉을 것도 같은. 마침 홍련·백련·노란어리연꽃 수십만 송이가 터져버린 세미원에서는 다음 달까지 연꽃문화제가 열린다.
재인폭포-①연천역
여름꽃 하면 해바라기도 질 수 없다. 2023년 말 1호선이 수도권 광역전철의 최북단인 연천역까지 이어지면서 해바라기 군락이 장관인 호로고루가 성큼 다가왔다. 호로고루는 고구려가 임진강변에 쌓은 성곽이다. 매주 수요일 연천역에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팁 하나. 좀 ‘늦게’ 가는 게 낫다. 해바라기는 늦여름이 절정이고, 호로고루 성곽의 실루엣이 여실히 드러나는 늦은 오후, 일몰 무렵이 절경이다. 목·금·토·일요일엔 재인폭포로 향하는 시티투어버스가 있다. 비 온 뒤 가면 후련하리 쏟아지는 물줄기를 볼 수 있다. 근처에는 ‘비상임 폭포’인 ‘비와야폭포’도 있는데, 비가 와야 생긴다는 뜻이다.
용문오일장-용문역(경의·중앙선)
용문역에 닿았다. 마침 용문오일장이 역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방금 밭에서 따온 오이와 가지·고추가 색을 뽐냈고, 옛날 사탕과 과자가 번들번들하게 빛났다. 누구는 막국수를 볼에 한가득 밀어 넣고, 누구는 막걸리를 목젖 적시며 들이켰다. 본능적 반응은 똑같다. 크어~.
‘물’ 만난 주당들. 여기까지 와서 지평막걸리를 놓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 들린 지평막걸리가 서울의 그것과 다르다. 양평군에서만 파는 주황색 뚜껑 ‘한정판 지평막걸리’인데, 밀가루로 빚었다. 용문역 너머 지평역은 경의·중앙선의 마지막 역이다. 근처에 지평양조장이 있다. 양평의 맑은 물이 만들어 낸, 전국구로 뜬 막걸리가 이곳에서 나왔다. 지난해 100년을 맞이했다. 6·25전쟁 지평리 전투에서 연합군의 사령부로 쓰인 곳인데, 현재는 기념관이다. 지평역 출발 열차는 뜸하다. 지평양조장 관계자가 “(시음) 한 잔 더 하시겠냐”고 물어봤음에도 “됐다”는,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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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북한산-③구파발·연신내·불광역/북한산우이역(우이신설선)
관악산-②④사당역/관악산역(신림선)
용문역까지 갔으면 용문산(1157m)이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당당히 28위에 올라 있다. 수도권 광역전철 역 중 산과 이어지는 곳이 많다. 지난해 753만 명이 찾아 가장 인기 있는 북한산은 3호선 구파발·연신내·불광역,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을 이용한다. 주말이면 이 역들은 등산 출발 장소로 삼는 산행객들로 북적인다. 올해 한 역술가의 “가보시라, 운이 트인다”라는 말에 2030세대가 많이 찾고 있는 관악산은 2·4호선 사당역과 신림선 관악산역을 기점으로 한다. 5호선 아차산역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광명동굴-①광명역
경기도 광명시 가학산에는 광명동굴이 있다. 1호선이자 KTX 정차역인 광명역에서 버스로 이동한다. 동굴에 들어서면 서늘함이 온몸을 덮치는데, 평균 12도의 이 찬 맛에 반바지 차림을 후회할 수도 있다. 광명 도덕산의 출렁다리는 인공폭포 위를 Y자로 가로지른다. 높이 20m. 산행 중 흘린 진땀이 식은땀으로 바뀌는 구간이다. 7호선 광명사거리역을 이용한다.
도봉산역(1·7호선)·수락산역(7호선)·청계산입구역(신분당선)·독립문역(3호선·인왕산) …. 경의·중앙선 열차는 다시 문산역으로 향했다. 운길산역을 지났다. 역 이름에 ‘산’이 많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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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무의도-인천공항1터미널역(인천국제공항철도)
“바다다!” 사람들은 전철에서 산이 보여도 “산이다!”를 외치지 않는다.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 용유역에서 서해가 보이면 외친다. “바다다!” 하지만 용유역은 수도권 광역전철이 아닌 별도의 궤도시설이다. 배차 간격도 35분이라, 이용이 까다롭다. 그래서 인천국제공항철도 인천공항1터미널역을 이용한다. 버스로 환승하면 용유도와 무의도에 닿는다. 서울에서 1시간이면 ‘그 섬’에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무의도에는 ‘환상의 길’이 있다. 해상 데크와 등산로가 연결된 코스다.
운서역(인천국제공항철도)에서는 장봉도, 오이도역(수인분당선)에서는 선재도와 이어진다. 낙조 명소다.
경의·중앙선 열차는 서울에 들어섰다. 승객이 쏟아져 들어왔다. 금세 후끈해졌다. 냉난방은 지난해 전철 불편 민원 78.4%로 1위다. “덥다”가 “춥다”보다 9배가량 많다. 더우면 객실 양쪽 끝으로 가는 게 낫다. 중앙부보다 4~5도가 낮다. 객실 공기 흐름은 양쪽 끝에서 가운데로 향하기 때문이다. 기사 서두에 ‘밖은 32도, 안은 24도. 그런데, 실제 19.7도’라고 했던 이유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 안 더위를 평등하게 나눠줬다. 이래서 수도권 광역전철 여행 이동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4시가 딱이다. 소름까지 돋는 그 시간, 최동단 남춘천역(경춘선)까지 간 뒤 닭갈비나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