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줄이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편법이든 수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밥벌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강도로 저항했다. 시청 앞에서 대대적인 공사 반대 시위를 하면서 감정이 격해지면 시청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 했다.
2002년 12월 16일 청계천 상인들이 청계천 복원 반대 플래카드를 걸고 차량 시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다고 해서 힘으로 짓누를 순 없었다. 방법은 설득뿐이었다.
나는 무교동 방향의 서울시청 벽을 허물고 통유리로 그곳을 막았다. 밖에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투명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그 공간을 민원실로 만들어 “청계천 공사와 관련해 의견이 있는 이들은 언제라도 이곳에서 상담하라”고 천명했다.
그러는 한편, 서울시 공무원들을 몇 명씩, 여러 개의 조(組)로 구성한 ‘상인대책팀’을 만든 뒤 담당 상인들을 분담해 끝없이 설득하도록 했다. 나는 입버릇처럼 “그때 청계천 상인들을 4700여 차례 만나 설득했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 수치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청계천 상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먼저 노점상이다. 당시 황학동 벼룩시장을 비롯해 청계천 변에는 수천 명의 노점상이 좌판을 펼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엄연한 불법 영업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호구지책 없이 그들을 내쫓을 순 없었다.
대책을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동대문운동장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한국 스포츠의 요람이던 동대문운동장은 제 역할을 다한 뒤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설 계획이 확정되지 않아 텅 비어있던 그 공간을 노점상들에게 내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계천 주변 노점상들이 '동대문 풍물시장'에서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동대문 풍물시장이다. 나는 운동장 내부를 텐트 형태의 구획된 공간으로 나눠 노점상들에게 하나씩 배분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노점상들도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앞다퉈 풍물시장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일부 노점상은 외부 세력과 손잡고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저항했다.
최후의 고비...폐타이어 바리케이드와 ‘가스통 사나이’
2003년 11월 30일 새벽, 성동기계공고(현 성동공고) 앞 대로는 싸늘했다. 그 가을의 마지막 날, 자연은 수은주를 빙점 가까이 끌어내렸다.
그곳에는 쇠파이프와 가스통으로 무장한 300여명의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동대문 풍물시장으로의 이전을 끝까지 거부한 소수의 노점상, 그리고 시위를 지원하기 위해 나온 전국노점상협회 조직원들이었다.
그들이 만든 바리케이드 너머에 또 한 무리가 있었다. 경찰과 서울시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을 예의주시하던 노점상들은 그들이 움직일 기미를 보이자 불을 놓았다.
2003년 11월 30일 청계천 노점상과 전국노점상협회 조직원들이 청계천 복원을 위한 노점 철거에 반대하며 철거반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중앙포토
불쏘시개는 폐타이어였다. 사람 키의 10배 가까이에 이를 정도로 높이 쌓아 올린 그 인화물질의 산(山)은 한 번의 불씨로도 활활 타올랐다. 그게 배출한 건 화기(火氣)만이 아니었다. 유독가스가 대로를 따라 전방으로 퍼져나가더니 경찰을 직격했다.
만추의 새벽, 두 무리가 그곳에서 대치한 건 바로 그 아래로 흐르는 청계천 때문이었다. 그날의 대치는 그 도로를 뜯어내고 수십년간 파묻혀 있던 청계천을 복원하려는 내 노력의 성패를 가릴 최대 고비였다.
경찰과 서울시 공무원들은 지난한 줄다리기를 끝내기 위해 그날을 디데이로 잡고 대대적인 노점 철거에 나선 참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 물러나라! 물러나지 않으면 이걸 터뜨리겠다. "
설상가상이었다. 인근 빌딩 옥상에서 한 사내가 진회색의 물체를 들어 보이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가스통이었다. 실로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섣불리 손을 썼다가는 대형 참사가 벌어질 판이었다.
폐타이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가스에 경찰의 진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 아, 저거 뭐지? 저거, 저거 좀 보십시오! "
한 경찰관이 손가락을 뻗으며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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