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아내는 캐나다 오타와의 유명 레스토랑에 취업했다. ‘캐나다 취업이민’을 꿈꿔온 우리 가족이 1차 관문을 통과한 거였다. 취업이민은 캐나다 현지 업체에 취업해 4년간 일하면 통상적으로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당시 내 나이는 38세, 아내는 36세였다. 4년 뒤 영주권을 받으면 40대 초반. 이후 10년 뒤인 50대 초반엔 시민권 취득도 가능하다고 여겼다. 두 아들(초4, 초2) 교육은 물론, 우리 부부의 노후를 위해서도 ‘캐나다 시민권’은 최고의 선택인 듯 보였다.
아내가 아이들과 먼저 캐나다로 떠나자 나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원룸에서 지내며 돈을 버는 족족 가족들에게 보냈다. ‘기러기 아빠’ 생활의 시작이었다. 2009년엔 나도 캐나다로 건너가 아내와 식당에서 일했다.
임세웅씨의 두 아이들이 캐나다 오타와에서 학교에 다니는 모습. 사진제공=임세웅
그리고 드디어 영주권을 신청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우리에게 변호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영주권 신청 기각. 아내가 중간에 식당을 한번 옮겼는데, 두 번째 식당이 영주권 기준에 맞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1년 넘게 백방으로 뛰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영주권 취득에 도전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유학 후 이민’(2년제 대학 졸업 후 1년간 직장생활 조건)이었다. 지쳐버린 가족들과 몇 년 더 고생해 기어이 영주권을 따낼지, 아니면 빈손으로 귀국할지 결단할 순간이 온 거다.
이민과 귀국의 기로에 선 순간, 임세웅(58)씨는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 지금 그와 그의 가족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캐나다 이민에 대한 임씨의 솔직한 조언은 뭘까. 이제 그의 얘기를 들려드리겠다.
눈앞에서 놓친 영주권…아깝지만 귀국 택한 사연
" 한국으로 갑시다. "
내 말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캐나다에서 6년간 식당 일, 육아를 병행해왔다. 내가 캐나다에 온 뒤엔 셋째 임신·출산까지 겹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나 역시 캐나다에서 2년간 아내와 함께 식당 일을 하며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음식을 만들었다. 1년 중 쉬는 날은 아내 생일 단 하루뿐이었다. 개인 생활은 전혀 없고 하루 종일 주방에 갇힌 신세였다.
" 캐나다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목표했던 영주권이 나왔다면 더 버틸 힘을 얻었겠죠. 그런데 목표가 무너지니까 가까스로 버텨온 몸과 마음도 한꺼번에 흔들리더라고요. "
캐나다 오타와에서 취업이민을 준비하던 시절의 임세웅씨 가족. 사진제공=임세웅
사실 나는 ‘유학 후 이민’을 목표로, 캐나다에서 좀 더 버틸 생각도 했다. 한국에서 4년제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IT(정보통신) 장비 업체에 오래 다녔으니, 캐나다에서 전문대에 들어가 졸업 후 취업한다는 조건이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캐나다 정부의 이민 정책 기조가 계속 엄격해지고 있다는 거였다. 당시 제도로는 ‘졸업 후 취업 1년’ 조건을 채우면 영주권을 준다는 건데, 실제로 내가 그 조건을 다 채운 3년 뒤에 그 기준이 유지될 거란 보장이 없었다. 만에 하나 제도가 바뀌면 또다시 세월과 돈만 낭비한 꼴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처럼 캐나다 취업이민을 꿈꾸고 건너왔다가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제도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중간에 제도가 바뀌는 경우 외국인 입장에서 기민하게 대응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중 몇몇은 어떻게든 캐나다에서 버텨보려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 자산까지 끌어다 투자이민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하지만 투자이민 역시 현지에서 몇 년간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데, 이 ‘고용 창출’의 조건도 날로 까다로워지고 있다. 결국 큰돈만 날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많이 봤다.
눈앞에서 영주권을 놓친 것 같아 너무도 아까웠다. 그래도 가족을 지키려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빈손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결국 고국이라 생각했다. 아내도 미련 없다며 귀국에 동의했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지내던 시절의 임세웅씨 부부. 사진제공=임세웅
" 만약 친한 지인이 제게 캐나다 이민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면, 저는 부정적으로 답할 거 같아요. 특히 나이가 50대 이상이면 무조건 반대입니다. 취업이민은 이미 늦었고 투자이민도 쉽지 않죠. 근데 40대 초반이면 ‘기술이민’을 추천할 거 같아요. 한국에서 용접·배관 등 캐나다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배우고 관련 경력을 꾸준히 쌓은 뒤 경력을 인정받아서 가는 거죠. 기술이민은 캐나다 정부 차원에서 문을 열어주고 있으니 그나마 안정적이거든요. "
2011년, 40대 중반이 된 우리 부부는 세 아이(고1, 중1, 2살)와 함께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당장 다섯 식구가 어디에 터전을 잡을지부터 정해야 했다. 캐나다로 떠나기 직전까지 살았던 인천, 어머니가 계신 경기도 용인, 큰형님이 자리 잡은 경기도 안성 등 세 곳이 후보지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전남 구례가 떠올랐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우리 가족의 마지막 국내 여행지가 바로 섬진강이었다. 그때 구례의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인상 깊었다. 그곳이라면 캐나다에서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리산의 설경과 산 아래 노란 산수유 꽃이 어우러진 구례의 모습. 임세웅씨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사진제공=임세웅
“구례에서 한 1~2년만 지내보는 거 어때?” 나의 뜬금없는 제안에 아내는 두말 않고 “그러자”고 했다. 아내는 “어차피 맨손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당에, 차라리 아무 연고 없는 데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구례에 월세로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2년만 있자던 당초 계획과 달리 15년째 거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