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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 ‘박정희 책사’ 충격의 당뇨 식단...“내 약” 3kg 포대 정체

중앙일보

2026.07.05 02:12 2026.07.0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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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 군사고문단 파견.’
1962년 5월 12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제목이다. 한국의 국가재건최고회의(5·16 이후 발족된 입법·사법·행정 통치 기구, 이하 최고회의)가 비밀리에 국군의 월남 파병을 결정한 바로 다음 날, 이 소식이 국내 언론사를 통해 대서특필된 것이다. AP·로이터 등 전 세계 통신사가 경향신문을 인용해 한국의 베트남 파병 소식을 전했다.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은 최고회의가 비밀리에 진행해 온 외교 작전 중 하나였다. 국내 정세는 물론 국제 외교 판도까지 흔들 민감한 사안인 만큼 보안 유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극비 사안이 새어 나간 최고회의는 발칵 뒤집혔다. 즉시 기자실을 폐쇄하고 기자들을 건물 밖으로 쫓아냈다.

그날 오후, 세 명의 기관원이 한 남성의 팔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도착한 곳은 최고회의 의장실. 그 안에 굳은 표정으로 미동 없이 앉아있던 남자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다.

" 그런 기사를 쓰려면 우리에게 미리 연락이라도 해야지, 덮어놓고 쓰면 되겠소? "
1962년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왼쪽)이 기자실에 방문해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오른쪽) 등 기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출처 김경래 자서전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홍성사)

1962년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왼쪽)이 기자실에 방문해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오른쪽) 등 기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출처 김경래 자서전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홍성사)


기관원에게 끌려온 이 남성은 월남 파병 특종 기사를 쓴 김경래 당시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였다. 최고회의를 출입한 지 1년이 됐지만 박정희를 코앞에 대면하기는 처음이었다.

" 의장실 문이 열리자마자 박 의장 손부터 봤어요. 혹시 총이라도 들고 있지 않을까. 갑자기 총을 꺼내면 어쩌나. 그 방을 나오기까지 어찌나 식은땀을 흘렸는지. "

이렇게 만난 두 남자는 이후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함께 겪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100세의 행복3〉 9화 주인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숨겨진 책사이자, 언론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김경래(99)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다.

서슬 퍼런 군사 독재 권력 앞에 흔들림 없이 언론인의 자존심을 지켜낸 비결, 고령자에게 치명적이라는 낙상과 골절 부상을 겪고도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삶의 철학, 당뇨인에게 ‘독약’이라는 이 음식을 굳이 챙겨 먹으면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이유, 100년을 살아온 그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방법 등을 모두 공개한다.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지난 6월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2025년 낙상 사고로 골절 수술 후 3개월간 입원했던 그였지만, 1년 만에 건강을 회복했다. 장진영 기자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지난 6월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2025년 낙상 사고로 골절 수술 후 3개월간 입원했던 그였지만, 1년 만에 건강을 회복했다. 장진영 기자

그날의 독대 이야기
박정희는 이 기밀을 유출한 사람이 누군지부터 물었다.

월남 파병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소? 그래도 내게만은 밝혀줘야지. 이런 국가 중대사를 발설한 놈을 알아야 다음 대책을 세울 거 아니겠소.

상대는 박정희였다. 군사력으로 대한민국의 전권을 틀어쥔 초강권적 권력자. 그의 눈 밖에 난다면 기자 하나쯤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김경래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취재원 보호는 기자의 생명”이라며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천하의 박정희도 1시간 만에 취조를 포기했다.

뜻밖에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71년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된 김경래를 청와대로 불러 대변인 자리를 제안했다. 그러나 김경래는 “보고 듣고 쓰는 일 말고는 다른 재주가 없다”며 여러 차례 거절했다. 정부가 언론인을 특채로 영입하는 행태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밥부터 많이 주십시오”라는 비유로 면전에서 꼬집기도 했다.

그랬던 김경래는 박정희와 40여 통의 밀서를 주고받은 ‘비밀 책사’가 됐다. 두 사람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 김경래가 푼 박정희와의 비화. 박정희와 독대했던 순간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했고,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로 인터뷰 현장을 단숨에 장악했다. 권력 앞에서 언론인의 품위를 지켰던 ‘기자 김경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실 취재진은 김경래와의 만남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백수(白壽)인 그가 지난해 집 안 문턱에 걸려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수술 후 석 달 동안 꼬박 누워만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고령자에게 낙상과 골절은 치명적이다. 거동이 줄어 근육이 빠지고 인지 기능마저 떨어질 수 있다는데, 그의 인생사와 건강 비법을 묻는 인터뷰가 가능할지 우려됐다.

실제 마주한 김경래는 뜻밖이었다. 그의 모습에서 사고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또렷했고, 가장 적확한 언어를 골라 간명하고 명쾌하게 전달했다. 100세를 앞둔 그가 낙상과 골절을 이토록 빨리 떨쳐내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뿐이 아니다. 사실 김경래는 2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일주일간 사경을 헤맸다. 의사들은 쉽게 호전되지 못할 거라 했다. 하지만 그는 일주일 만에 멀쩡히 걸어서 퇴원했다.

(계속)

“난 맹물에 밥 말아 먹을 때도 ‘이것’을 꼭 넣는다. 독약이라고? 이게 내 약이다.”

사고 마다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준 김경래. 건강 비법을 알려주겠다던 그는 취재진을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찬장 문을 연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당뇨’ 진단을 받은 그가 먹는 식단은 충격적이었다.
※김경래가 집에 쟁인 3㎏ 포대의 정체,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2496


이민정.김서원.선희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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