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지갑 비밀번호 잃어도… 가상자산 강제집행 가능해진다
중앙일보
2026.07.05 03:31
2026.07.05 17:35
대법원이 가상자산의 압류부터 현금화까지 절차와 관련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 입법 예고한다. AFP
앞으로는 법원 판결을 받고도 채무자가 “전자지갑 비밀번호를 잃어버렸다”고 버티거나 코인을 다른 곳으로 빼돌려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대법원이 가상자산의 압류부터 현금화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구체적인 기준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그동안 가상자산은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실제 집행 단계에서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한 투자자가 소형 거래소에 착오로 잘못 보낸 시바이누(SHIB) 코인 54억5000만여 개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거래소 대표가 구속되고 비밀번호가 담긴 USB가 압수되면서 자산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법원은 시세가 폭락한 시점을 기준으로 환산한 금액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가상자산 특유의 은닉 가능성과 기술적 한계 탓에 명확한 강제집행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대법원은 가상자산의 거래 구조를 반영한 ‘민사집행규칙 일부개정규칙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했다.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제도적 기준을 세운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법원의 압류 명령이 내려지면 거래소나 채무자는 코인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이전할 수 없다. 압류된 자산은 채권자에게 직접 넘기거나, 법원 집행관이 직접 거래소 계정을 개설해 매각한 뒤 현금화하게 된다.
개인 지갑에 보유한 코인 역시 강제 이전 명령 대상에 포함된다. 소송 도중 채무자가 코인을 다른 지갑으로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 자산을 묶어두는 가압류와 처분금지 가처분 절차도 명문화됐다.
원화 마켓에 상장되지 않아 현금화가 어려웠던 이른바 ‘잡코인’(비주류 가상자산)을 채무 변제에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개정안은 거래가 부진한 코인의 경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거래가 활발한 주요 가상자산으로 교환한 뒤 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만 거래량이 아예 없거나 사실상 거래가 중단된 부실 코인은 현실적으로 현금화가 어려울 수 있다.
법원행정처는 다음 달 11일까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10월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가상자산 거래 규모와 집행 수요가 급증하는 현실을 반영했다”며 “자산 특성에 맞는 명확한 절차를 구축함으로써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성표([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