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대 초 미국은 뜨거운 논쟁에 휩싸여 있었다. 새로 연방에 가입할 예정인 캔자스주와 네브래스카주의 노예제 금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네브래스카가 북위 36도 30분 이북 지역의 노예제를 금지하는 이른바 ‘미주리 타협’을 폐지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노예제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주권주민’ 원칙을 도입하려 하자, 노예제에 반대하던 북부의 반발이 쏟아진 것이다.
당시 미국은 양당제 국가였다. 남부 농장주와 백인을 지지층으로 하는 민주당은 금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이미 노예제가 폐지된 북부 공업 지대를 기반으로 삼고 있던 휘그당은 격렬한 내홍에 사로잡혔다. 북부의 인도주의자, 기업가, 현직 정치인들이 모여 새로운 정당을 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1854년 3월 20일 위스콘신주 리폰에서 반 네브래스카를 외치는 지역 모임이 개최되었고, 새로운 반 노예제 정당의 이름으로 ‘공화당(Republican)’이 제안되었다. 같은 해 7월 6일 미시건주 잭슨 인근에서 공화당은 최초의 광역 전당대회를 열어 킨슬리 빙엄을 미시건 주지사 후보로 선출했다. 공화당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자유로운 땅, 자유노동, 자유인(Free Soil, Free Labor, Free Men)”. 최초의 슬로건만 봐도 알 수 있듯 공화당의 의제는 분명했다. 그 어디에서도 노예제와 강제 노동을 허용하지 않으며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미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신흥 산업 자본과 노동자의 이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시대 정신과도 발을 맞춘 이 신생 정당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창당 후 6년 만인 1860년에 대통령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사진)이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공화당도 변화했다. 노예제에 반대하고 북부와 흑인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었던 공화당은 1960년대 이후 남부 백인들을 표밭으로 삼는 보수 정당으로 변모했다.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반이민 기조가 더 강해져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디 초심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