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일이 잦다. 허벅지를 꼬집어 볼 필요도 없는 분명한 현실이지만, 꼬집어 봐야 할 만큼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5월에는 이미 그리워진 선배 선생님 한 분이 돌아가셨다. 발병에서 부음까지가 너무 속전속결이어서 슬픔마저 피상적이었다. 1970년 후반 학생기자로 일했던 대학교 신문사의 주간 교수님이 칭찬을 많이 해서, 그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 앙시앙 레짐에 혁명이 도래하고 이노베이션의 축포가 터지리라 기대했다. 검은 선글라스는 끼지 않았지만, 선도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제안했다. 저널리즘 스쿨, 커뮤니케이션 대학, 광고홍보학과의 필요성, 언론 전문직 재교육, 스피치 교육, 언론사 입사 제도의 개선, 퇴직 언론인의 복지와 활용제도 등등. 제안은 현실이 되기도, 무심히 사라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건 제자의 취업 면접 지원에 온 힘을 보태며 대학 서열과 같은 우리 사회의 거대한 편견에 대한 저항을 한 것이었다. 물론 고정관념의 도도함으로 성공률은 낮았지만, 불평이나 자기 이익에 열중하는 교수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제자 사랑이었다.
짬짜미 소통, 월드컵 탈락 초래
여당의 독주, 후안무치한 일
인간은 소통해야 존재하는 동물
김지윤 기자
그는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겉모습을 동시적으로 구사하며 엄숙주의가 지배하던 당시에 남녀상열지사·생로병사·종교에 대한 소통에서 주제의 다양과 고저 및 진퇴에서 자유 분망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먼지가 되리니”(헤르만 헤세)에 함께 공감한 그가 죽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허심탄회한 소통도 못 하고 마지막 길로 떠난 건 큰 아쉬움이다.
지난달 28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32강 탈락 확정은 온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스포츠의 절대 이상이 분리되지 않고 격돌하는 경기가 축구이다. 축구만큼 기존의 경계를 초월하는 스포츠도 없다. 사사건건 대립 충돌하며 국민과 세계를 불안하게 하고, 전쟁으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못된 정치도, 이념도, 종교도, 침략도 축구를 막지는 못한다. 나이·성별·학력·직업·수입의 차이도 축구의 매력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어떤 지역·체제·집단·문화에서든 온몸과 마음으로 즐기는 보편성을 지니고, 11명 모든 선수가 패스를 주고받는 협력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운동이다.
손흥민·이강인·김민재라는 전방·중원·후방을 누비는 월드클래스를 포함한 대표 선수들을 제대로 협력하지 못하게 한 무전술, 무능력으로 인한 무기력한 패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축구협회의 밀실 행정, 특정 인맥·학맥 위주의 운영, 불공정한 감독 선임 등 이익집단화한 카르텔 난맥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다. 짬짜미 소통, 밀실 소통이 낳은 총체적 시스템 부실에 따른 불가피한 재난인 것이다. 대통령도 ‘능력보다 내 편, 네 편을 더 중시한 무능한 지휘관 선발의 결과’로 규정하고 ‘감시와 견제 시스템 구축과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2026년 후반기 국회가 개회했다. 여야 협상의 부실로 국회의장은 야당 의원의 상임위를 일방적으로 배정하고 ‘팩스’로 알렸다고 한다. 여당은 18개 상임위원장 중 법사위를 포함한 11개를 독점하고, 여차하면 나머지 7개 상임위도 차지할 수 있다는 태세다. 이런 독주는 2020년 이후 벌써 네 번째이다. 민주당은 민주적인 국회를 담보하는 최소한의 제도인 필리버스터(조건부 무제한 토론) 요건을 강화하고, 패스트트랙(안건 신속 처리 제도)의 법안 심사 기간을 줄이는 것도 언급하고 있다. 다수당의 일방적 독주에 대한 야당의 반대 의사 표시 행위의 축소를 넘어 견제와 균형에 바탕 하는 민주주의를 위축시키는 일이다. 협의를 통해 나랏일을 하라고 선출된 이들이 파행을 습관처럼 일삼고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통일신라의 고승 원효는 화합의 원리를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不一而不二)’이라고 설명했다. 상대를 자기 자신처럼 존중하면서 소통하면 화합에 이른다는 말씀이다. 인간은 소통을 통해 공유하고, 이해하고, 존재하는 동물이다. 밀실의 동굴에 안주하지 말고 광장으로 나와 공생적 교감을 극대화하는 소통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