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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조의 혁신의 우주경제] 라그랑주, 우주의 조용한 조율자

중앙일보

2026.07.05 08:14 2026.07.0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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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지구에서 태양 반대 방향으로 150만㎞. 그 깊은 우주에 떠 있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이 보내온 별빛 사진을 감탄하며 바라볼 때 우리는 250여 년 전 한 수학자가 남긴 조용한 흔적을 상기한다. 그 이름은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 그는 거대한 망원경도, 드라마 같은 실험도 남기지 않았다. 대신 종이와 펜, 그리고 침묵의 사색만으로 중력과 운동이 빚어내는 균형점, 즉 ‘라그랑주 점’들을 찾아냈다. 두 천체 사이에 인공 위성 같은 ‘작은 천체’가 제 위치를 지킬 수 있는 균형점이 라그랑주 점이다. 지구 주변에는 L1부터 L5까지 모두 5개가 있다. 이 균형점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태양-지구 라그랑주 점, 즉 L2 주변을 회전하고 있고, 미 항공우주국(NASA)은 달 궤도 게이트웨이 우주정거장으로 지구-달 라그랑주 점을 거점으로 삼을 계획도 세웠었다. 1975년 설립된 우주 거주지 운동 단체 L5 소사이어티 역시 지구-달 L5 도시를 구상했었다. 달 거주가 현실화하면 ‘오닐의 실린더’로 불리는 궤도 도시 건설이 L4 또는 L5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두 천체 사이의 위치 고정점
18세기 수학자 라그랑주 발견
제임스웹 등 우주망원경 집결
AI와 경제·경영 계산에서 사용

2023년 9월 발사돼 지구를 떠나 라그랑주 점으로 향하고 있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의 가상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2023년 9월 발사돼 지구를 떠나 라그랑주 점으로 향하고 있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의 가상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태양 숨결 읽는 우주 전초기지
오늘날 ‘라그랑주 점’이라 불리는 다섯 지점은, 태양과 지구, 지구와 달처럼 두 천체의 중력과 공전에서 생겨나는 특별한 조화의 자리다. 위대한 수학자, 오일러가 일직선 위의 L1·L2·L3를 먼저 찾아냈고, 라그랑주가 제한적 삼체문제를 지배하는 미분방정식을 풀어 정삼각형을 이루는 다섯 개의 평형점을 찾아냈다. 특히 L4와 L5는 작은 교란에도 원상태를 유지하는 안정점이라는 사실도 밝혀내, 우주의 안정적인 ‘주차 공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라그랑주의 통찰은 현재의 태양 기상관측에도 깊이 스며있다. 태양-지구 L1 점에는 ‘태양·헬리오스페릭 관측위성(SOHO)’과 ‘심우주 기후 관측위성(DSCOVR)’ 같은 우주망원경들이 배치되어 태양풍과 자기 폭풍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이곳에서 측정된 데이터 덕분에 우리는 수십 분에서 한 시간가량 앞서 위험을 예측하고, 위성·전력망·GPS 시스템을 방어할 시간을 번다. 한편, 지구보다 60도 뒤에서 궤도를 도는 L5는, 자전하는 태양의 측면을 미리 관측해, 태양 표면의 거대한 폭발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기 훨씬 전에 우주 기상 변화를 조기에 경고해 주는 독보적인 시야를 제공한다. 유럽우주청은 L5 태양 관측 위성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L1이 정면초소라면, L5는 측면초소인 셈이다. 유용성이 상당히 떨어지지만 한국도 L4에 태양관 측선을 보낼 계획을 갖고 있다. 지상으로 눈을 돌리면, 라그랑주가 남긴 또 다른 선물인 ‘라그랑주 승수법’이 있다. 이 방법은 공학 분야에서 구조물 설계나 로켓 궤도 최적화 등에 쓰이는 것으로 잘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경영과 경제학에서도 일상적으로 활용되고 있고 현재의 AI 이론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는 ‘제약 조건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찾는 법’을 수식으로 구현한 도구다.

AI 심장에서 고동치는 라그랑주 승수
오늘날 이 방법은 AI와 머신러닝의 깊은 내부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어렵지만 더 풀어 설명하기도 쉽지 않는데, 가령 대규모 언어모델을 학습시킬 때는 단순히 손실 함수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가중치가 지나치게 커져 과적합을 일으키지 않도록 제약을 둔다. 신경망이 학습될 때 이 제약을 적절히 고려하려면 라그랑주 승수를 활용해야 한다. 또한 ‘지원 벡터 머신(SVM)’처럼 경계면을 최대한 넓게 두고 데이터를 분류하는 알고리즘도, 본질적으로는 “오분류는 허용하되 그 수를 제한하면서, 간격은 최대화하라”는 제약 최적화 문제다. 여기서 라그랑주 승수는 각 데이터 점마다 하나씩 붙어, 어떤 데이터가 결정 경계를 형성하는 핵심인지, 어떤 데이터가 여분인지를 가려내는 역할을 한다. 겉으로는 복잡한 AI 모델이지만, 그 심장부에는 18세기 수학자의 간결한 프레임워크가 고동치고 있는 셈이다.

라그랑주는 1736년 지금의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았으나, 수학이라는 세계를 만나자 그의 삶은 전혀 다른 궤도를 탔다. 19세에 이미 대학 강단에 섰고, 30대가 되기도 전에 유럽이 인정하는 거장이 되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를 베를린으로 초청해 “유럽 최고의 왕이 유럽 최고의 수학자를 부른다”고 자부했다. 나폴레옹은 그를 백작으로 임명하고 후하게 대우했다. 하지만, 그는 권력보다 수학의 아름다움에 더 마음을 두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단순함이 빚어내는 우아함이었다. 역학을 ‘힘’으로 서술하던 뉴턴의 전통을, 그는 ‘에너지’라는 더 근본적이고 매끈한 언어로 다시 정리했다. 그의 걸작 『해석역학』은 놀랍게도 그림 하나 없이 오직 식과 문장만으로 채워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라그랑주 방정식과 라그랑주 역학은 이 고요한 혁명의 결실이다.

라그랑주는 별을 직접 관측한 천문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우주를 이해하고자 한 사색가였다. 그가 찾아낸 라그랑주 점들은 이제 우주관측과 태양 기상 관측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그가 고안한 라그랑주 승수법은 AI와 경제·경영의 계산 속에서 매일같이 쓰이고 있다. 그가 라그랑주 점을 찾아낸 1772년의 조선은 영조 48년. 유럽이 수학과 과학으로 우주의 법칙을 찾아가던 바로 그 시기에 우리는 예송논쟁과 당파싸움으로 목숨을 걸고 있었다. 이 차이가 결국 조선 말기 백성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이어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의 질곡의 길을 가게 만들었다고 본다. 지난 60여년간 과학기술 발전에 매진한 결과 우리는 이제 세계적 기술 국가가 되었다. 다시는 대한민국이 허황한 논쟁으로 후퇴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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