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에서 일면식 없는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장윤기(23)가 지난 5월 14일 오전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심야 시간대 광주 도심에서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장윤기(23)에 대한 경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경찰이 당시 사건을 수사한 형사팀장을 긴급체포했다.
광주경찰청은 6일 “장윤기 사건을 담당했던 광주 광산경찰서 소속 형사팀장 A 경감을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A 경감은 지난 5월 5일 여고생 이채원(16)양 살해 사건 직후 장윤기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일부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A 경감 외 장윤기 담당팀 소속 형사들은 이날부로 전원 모든 업무에서 배제됐다.
지난 5월 7일 광주 광산구 신가동 한 장례식장에서 20대 남성의 흉기에 찔려 숨진 여고생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A 경감에 대한 경찰 수사는 사건 초기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이 잇따라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경찰은 사건 직후 장윤기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리얼돌을 압수하지 않았고, 현직 경찰 간부인 장윤기의 아버지가 이를 폐기한 사실 등이 검찰 보완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장윤기의 유전자(DNA)가 발견된 리얼돌 실물은 폐기된 상태여서 현재 리얼돌 관련 재판 증거로는 훼손 상태를 기록한 동영상과 사진만 제출된 상태다. 목·가슴 부분이 집중적으로 훼손된 리얼돌은 장윤기의 왜곡된 성 의식을 입증할 주요 증거였지만 실물 없이 재판에 채택됐다. 검찰은 장윤기의 아버지가 수사팀으로부터 아들의 자취방 주소와 출입 비밀번호 등을 전달받은 후 리얼돌과 휴대 전화 등을 폐기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또 범행에 사용된 SUV 차량에서 혈흔과 지문을 채취하고도 차량 자체는 압수하지 않은 채 현장에 남겨뒀다. 당시 경찰은 장윤기의 차에서 피해자의 혈흔 유전자(DNA) 정보를 확보하고도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가 장윤기 아버지의 증거 인멸 의혹이 불거진 뒤에야 송치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지난 5월 5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도로에서 살인 혐의 등을 받는 장윤기를 경찰이 긴급 체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차량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추가 혈흔과 블랙박스 메모리카드 등을 발견했다. 장윤기가 범행 당시 이용한 차량은 검찰이 압수하기 전까지 보름 동안 장윤기의 아버지가 계속 운행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찰 수사의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장윤기가 과거 사용했던 여러 대의 휴대전화가 아버지에 의해 불태워진 사실도 보완수사를 통해 밝혀냈다. 당시 경찰 수사팀은 10차례에 걸쳐 장윤기와 아버지 간 통화를 연결해줬고, 수사 관계자도 개별적으로 장윤기 아버지와 수십차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수사 과정의 적절성을 확인하는 ‘내부 감찰’을 벌이는 과정에서 A 경감이 증거를 인멸한 정황을 확인했다. A 경감이 범죄 증거물을 직접 인멸한 의혹도 불거졌으나, 자세한 범행 내용과 동기 등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광주경찰은 수사과장을 팀장으로 22명 규모의 전담팀을 편성해 장윤기의 아버지와 수사 관계자 사이의 유착 의혹 등을 규명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팀장을 비롯해 팀원 등 관련자 모두에 대해 엄중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도 A 경감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3일부터 사건을 담당한 광산경찰서와 장윤기의 아버지가 소속된 서부경찰서, 사건을 총괄한 광주경찰청을 대상으로 감찰을 벌여왔다. 검찰도 A 경감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한 수사 여부를 검토 중이다.
홍석기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은 6일 A 경감과 수사팀의 유착 의혹에 대해 “유구무언”이라며 “바로 수사 감찰을 동원했고, 감찰 중 수사 전환 필요성을 보고받아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이번 건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명운을 걸고 하겠다”고 밝혔다.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도 없는 10대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가 지난 5월 14일 오전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장윤기는 지난 5월 5일 오전 0시 10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도로에서 이양을 살해하고, 이를 말리던 또 다른 고등학생을 살해하려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장윤기는 첫 재판에서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성범죄 목적 범행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반면 검찰은 장윤기가 여고생 살해 당시 자신의 차량 뒷문을 열어놓은 채 범행을 한 사실 등을 토대로 강간 등 살인 혐의를 적용한 상태다. 검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해당 장면을 확인하고 성폭행 목적의 납치 시도 증거로 재판부에 제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