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애폴리스 조지 플로이드 스퀘어엔 그가 사망한 자리를 중심으로 추모 공간이 조성돼 있다.
백인이 60%인 미니애폴리스가 어느 날 세계 흑인 인권운동의 성지가 됐다. 2020년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 데릭 쇼빈의 무릎 아래 숨진 뒤 이 도시는 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불을 붙였다.
6년이 지난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성지의 열기보다 기억의 피로감에 가까웠다. 지난달 24일부터 나흘간 미니애폴리스를 걸으며 되물은 질문은 하나였다. 플로이드는 과연 마틴 루터 킹처럼 미국인이 함께 기리는 이름으로 남았는가.
플로이드는 분명 미국 사회에 인종주의와 경찰 폭력의 문제를 부각시킨 상징이었다. 그렇다고 흑인 사회가 추앙하던 영웅은 아니었다.
미네소타주 한인회장을 지낸 변우진 변호사는 플로이드 사건을 ‘미란다 원칙’에 비유했다.
“미란다 원칙은 피의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사법체계의 중요한 원칙이지만, 그 이름의 유래가 된 범죄자 에르네스토 미란다를 영웅으로 추앙하지는 않는다. 플로이드 역시 우리 사회가 인종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아이콘이지, 영웅화할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그의 말대로 미니애폴리스 시내에서 플로이드를 영웅시하는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추모 공간은 그가 숨진 현장인 ‘조지 플로이드 스퀘어’에 집중돼 있었다. 38가와 시카고 애비뉴가 만나는 교차로에는 벽화와 꽃, 손글씨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그곳에 서면 그의 죽음이 남긴 상처와 분노가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몇 블록만 벗어나도 플로이드 사건은 도시 일상에서 상당히 희미해져 있었다. 오히려 나흘 동안 미니애폴리스에서 가장 많이 본 것은 무지개 깃발과 조명이었다. 프라이드 퍼레이드 기간을 맞아 거리와 상점, 공공시설 곳곳은 성소수자 권리를 상징하는 색으로 도배된 듯했다. LA에서 온 한 방송사 프로듀서는 “LA보다 더 진보적인 도시처럼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성소수자 인권과 흑인 사회의 비극을 등가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도시가 무엇을 적극적으로 기념하고, 어떤 상처를 오래 기억하는지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사건 당시 도시 전체를 뒤덮은 추모와 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옅어졌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억이 끝내 일상에 밀려났다고나 할까.
현지 주민인 미네소타대 출신의 간호사 케일라 박은 그 변화를 지켜봤다. “플로이드 사망 후 첫 1~2년은 도시 전체에 추모 분위기가 강했지만,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만, 하나의 사건처럼 지나간 측면도 있다.”
플로이드의 죽음이 가벼운 사건이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통해 미국 사회의 가장 오래된 모순을 극적으로 드러낸 인물이었다. 플로이드는 미국 사회를 바꿨지만, 미니애폴리스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의 이름은 역사에 남았지만, 도시는 이미 다음 의제로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