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후 담합을 통해 유가를 폭등시킨 혐의를 받는 국내 정유사와 직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6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 4사를 공정거래법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지난 3월 4일 국내 4대 정유사 중 한 곳의 가격결정부서 대화방에서 직원들이 나눈 실제 대화 내용이다. 이들은 내부 메신저에서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 듯” 등의 대화를 주고받았고 검찰이 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던 시기 국내 정유 4사의 가격 담합과 불공정 거래 관행이 국제유가 급등기에 소비자 부담을 키웠다. 정유사들은 주유소와 사실상 전량구매 계약을 맺어 가격 경쟁을 차단했고, 전쟁 국면에서는 가격을 일제히 인상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1800원을 넘어섰고, 가격이 더 오르기 전 주유하려는 차량이 몰리며 일부 주유소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검찰은 정유사들이 자영주유소와 ‘전량구매 계약’을 체결해 가격 경쟁을 원천적으로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이 계약에 따라 주유소는 정유사가 정한 가격으로만 제품을 공급받아야 했고, 최종 정산 가격도 정유사가 월말에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주유소는 더 저렴한 제품을 선택하거나 손익을 미리 계산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설명이다.
전량구매 계약은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시정을 명령했고, 대법원도 2013년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전량구매 계약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재도 정유 4사의 전량구매 계약 비중은 평균 9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주유소협회 설문에서는 자영주유소의 83.3%가 계약을 선택할 실질적인 권한이 없었다고 답했다.
검찰은 정유사들이 계약을 위반한 주유소에 대해 보너스 지급 중단이나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일부 내부 메신저에서는 다른 거래처로 옮기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는 취지의 발언도 확인됐다.
검찰은 정유사들이 스와프(교환) 거래를 통해 서로 석유제품을 주고받고 있는 만큼 제품 품질 차이는 사실상 없으며, 가격이 유일한 경쟁 요소였다고 설명했다.
수사 결과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가격 정보를 교환한 뒤 가격을 인상했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이를 반영해 가격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전쟁 당시 정유사들이 충분한 원유 재고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가격을 전례 없이 큰 폭으로 인상했다고 보고 있다.
담합은 전쟁 이전인 2024년 7월부터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간 직접 담합 규모를 14조2000억원으로 추산했으며, 정유 4사의 가격 인상 효과까지 포함하면 전체 담합 규모는 약 2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정유사들의 가격 인상으로 자영주유소도 판매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