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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지 않는다

중앙일보

2026.07.06 08:01 2026.07.0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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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 세계랭킹 1위 출신인 프로게이머 배재민은 9월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노린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일본이다. 왼쪽은 배재민의 주캐릭터인 브라이언 퓨리. 김종호 기자

철권 세계랭킹 1위 출신인 프로게이머 배재민은 9월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노린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일본이다. 왼쪽은 배재민의 주캐릭터인 브라이언 퓨리. 김종호 기자

격투 게임 ‘철권’ 국가대표 ‘무릎’ 배재민(41)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한다. ‘격투 게임의 본산’ 일본에서 일본 선수들을 무릎 꿇리는 게 목표다.

9월 개막하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도 정식 종목으로 당당히 참여한다. 금메달 11개가 걸렸고, 그 중 9개 종목에 한국 선수들이 나선다. 리그오브레전드(LoL) 대표팀엔 ‘페이커’ 이상혁(T1)이 합류해 3년 전 항저우 대회에 이어 2연패에 도전한다.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종목은 격투 게임이다. 스트리트파이터 6, 철권 8, 더 킹 오브 파이터즈 XV 등 1990년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게임들을 한데 묶어 3전 2승제 단체전 방식으로 대결한다.

지난 5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철권 세계랭킹 1위 출신 배재민이 우승했다. 최근 마포구 키움 DRX 빌딩에서 만난 그는 “10년 전 ‘철권으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게이머로서 태극마크를 단 건 너무나 큰 영광”이라고 했다.


KOF의 이광노(45), 스트리트 파이터’의 연제길(39)과 팀을 이루게 된 그는 “그 전엔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같은 팀이 돼서 함께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니까 좋았다. 뭔가 대통합 같은 느낌이랄까 시너지 효과도 있다. 물론 나이에 따른 위아래는 확실하다”고 웃었다.
지난 1994년 첫 선을 보인 철권이 당시 초등학생이던 배재민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여러 가지 격투게임을 섭렵했던 그에게 폴리곤을 활용한 철권은 신세계 같았다. 그는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유행하며 격투 게임 붐이 일었다. 그러다 3D 입체 캐릭터를 앞세운 철권이 등장하며 판도가 바뀌었다. 상대를 공중에 띄운 뒤 연속기로 쓰러뜨리는 쾌감이 엄청났다. 기술을 연마했을 때의 성취감과 마무리 했을 때의 손맛이 달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각 지역별로 널리 알려진 오락실에선 ‘철권 고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실력을 겨루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배재민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명한 상대들과 싸웠다. 돈도 명예도 없지만 ‘철권 만큼은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대학 진학 후엔 상경해 팀을 결성하기도 하고, 철권에 청춘을 걸었다.


이후 스타크래프트를 앞세운 e스포츠 붐을 타고 게임 방송사가 주최하는 철권 리그가 만들어졌다. 배재민도 고심 끝에 ‘프로’의 길을 택했다. 각종 대회에서 그가 들어 올린 우승 트로피는 100개가 넘는다. 오락실이 아닌 콘솔 게임기를 활용한 온라인 배틀이 활성화되면서 안정적인 직업이 됐다.

‘무릎’이라는 닉네임으로 승승장구한 배재민은 손목 통증을 견디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무릎’이라는 닉네임으로 승승장구한 배재민은 손목 통증을 견디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배재민은 “스타리그에서 출전하는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은 게 부러웠다. 철권은 스타크래프트처럼 큰 리그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테켄 크래쉬 리그가 자리잡으면서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즐기던 게임이 성적을 내야 하는 압박감이 됐지만 즐거웠다”고 했다.

닉네임 ‘무릎(Knee)’은 즐겨 쓰는 캐릭터(브라이언 퓨리)의 킥복싱 기술에서 착안해 만들었는데, 이제는 철권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가수 남규리와 펼친 이벤트 경기 동영상은 수백 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임요환·홍진호(이상 스타크래프트)·배성웅(LoL) 등과 함께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 됐다.

격투 게임도 신체적 능력이 필요하다. 상대 기술과 움직임을 읽어낸 뒤 0.1초 안에 대응 방식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배재민은 순발력과 체력을 키우는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40대가 되니 반응속도가 확실히 떨어졌다. 10번에 7, 8번 맞추던 기술 성공률이 낮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고 했다.

40대의 나이에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뛰어난 심리전 능력에 있다. 그는 “기술을 잘 쓰는 것 못지 않게 상대의 수를 읽는 게 중요하다”면서 “철권은 카드게임이나 보드게임 못지 않은 고도의 두뇌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서 다른 스포츠 선수들처럼 도핑 검사를 받거나 심리적인 교육도 받았다. 배재민은 “아시아선수권 때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고, 컨디셔닝도 신경써주셨다. 게이머에게도 중요한 부분이다. 국가대표로서 임하는 마음도 새로웠다”고 했다.

철권을 포함해 이번 대회 격투 종목은 모두 일본 게임이다.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도 일본이다. 지난 4월 진주에서 열린 아시아 e스포츠선수권 결승에선 일본이 한국에 2-1로 승리했는데, 당시 배재민이 일본 최고수 나카야마 다이치(Nobi)에 패했다.

배재민은 설욕을 자신한다. 그는 지난 2022년 광복절에 열린 한·일 친선대회에서 일본 선수 5명을 줄줄이 꺾으면서 승리를 이끌었다. 일본에서 열린 대회에서 일본 선수들을 수 차례 이긴 경험도 있다. 손목 통증을 견디며 훈련에 매진 중인 그는 “철권은 아무래도 일본이 라이벌이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으니 일본에겐 절대 지지 않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김효경([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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