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조금 늦게 장마가 찾아왔다. 장마철에는 햇빛이 줄어들고 습도는 높아진다. 이 두 가지 변화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친다. 햇빛은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한다. 그래서 흐린 날이 계속되면 세로토닌 생성이 감소해 무기력감이나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 습도가 높아지면 땀이 잘 증발하지 못해 체온 조절의 효율이 떨어진다. 몸은 적정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땀을 더 분비하고 혈액순환을 늘리는 등 여러 생리적 반응을 계속해야 한다. 그 결과 평소보다 쉽게 피로를 느끼고 집중력도 떨어질 수 있다. 장마철이면 이유 없이 피곤하고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다. 햇빛 감소와 높은 습도가 뇌의 화학 작용과 신체의 생리 반응을 동시에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김지윤 기자
흥미로운 점은 뇌가 환경의 영향을 받는 만큼, 우리가 환경을 조금만 바꾸면 그 변화에도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햇빛이 부족한 날에는 낮에 실내조명을 밝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비가 와도 잠시라도 밖을 걸으며 자연광을 쬐는 것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좋은 방법이다. 또한 가벼운 운동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엔도르핀의 분비를 늘리고, 규칙적인 수면은 생체리듬을 안정시킨다. 쾌적한 환경은 뇌가 받는 스트레스 신호를 줄여준다. 장마철에 유독 방 청소나 환기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흔히 기분을 마음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장마철의 불쾌감은 뇌와 몸, 그리고 환경이 함께 만들어내는 과학적 현상이다. 그렇다고 날씨를 바꿀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조명 하나를 켜고, 창문을 열고, 잠시 걸음을 옮기는 작은 행동으로 뇌의 상태를 바꿀 수 있다. 장마는 피할 수 없지만, 장마를 대하는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다. 비가 내리는 계절일수록 작은 습관이 마음의 맑은 날씨를 만드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