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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의 마켓 나우] 메가 클러스터, 선언이 현실이 되려면

중앙일보

2026.07.06 08:04 2026.07.0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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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학과장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학과장

800조 원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계획이 발표되자 전력과 용수 확보 문제를 비롯해 사업의 현실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당연히 짚어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국운이 걸린 기술 패권 전쟁에서 주판알부터 튕기다 기회를 놓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리스크를 철저히 통제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원대한 목표를 먼저 제시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달에 간다”는 선언이 대표적 사례다.

흥미롭게도 혁신의 역사에서는 후자가 더 빛을 발했다. 담대한 목표를 먼저 세우고 실행에 나설 때, 예상치 못한 난관을 돌파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발휘된다. 물론 이런 도전 방식은 시행착오와 예산 낭비 위험이 크기에 리스크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AI 혁명으로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경쟁은 과거 데이터로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성과 승자독식 구조가 지배하는 전장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가 추진하는 1조 달러(약 1400조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나 우리나라의 메가 클러스터는 참고할 성공 방정식 자체가 없다. 이런 미지의 영역에서 완벽한 계획을 기다리다가는 첫 삽조차 뜨지 못한다. 분석 마비에 빠져 머뭇거리는 사이, 주도권은 불확실성 속으로 과감히 뛰어든 경쟁자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처음부터 완벽한 판단력이 아니라, 내린 결정을 옳게 만들어 가는 실행력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온 ‘무어의 법칙’ 역시 물리적 자연법칙이 아니었다. 업계 전체가 선언적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원과 혁신을 쏟아부어 이뤄낸 자기충족적 예언이었다.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된 소모적인 가능성 논쟁은 접어두고, 기업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규제의 빗장을 풀고, 지역 사회와 대타협을 끌어내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기왕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걸음을 내디딜 것이라면, 완전히 새로운 협력의 장을 마련하는 담대한 시도를 추가하기를 제안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3D DRAM과 같은 초격차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소·부·장 기업들이 동참하여 경쟁국들을 압도적인 기술 격차로 따돌리는 파격적인 협력 플랫폼이 800조 메가 클러스터 위에서 가동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초거대 프로젝트는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의지와 연대로 탄생하는 것이다. 계산기를 덮고, 원대한 목표를 향해 담대한 걸음을 내디딜 때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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