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년 간 대한민국 축구 행정의 정점에 섰던 정몽규(사진) 대한축구협회장이 물러났다. 정 회장은 6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열린 축구협회 임원 회의 직후 사임서를 제출했다. 지난 2013년 제52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세 차례 임기를 연장한 그의 장기 집권 체제도 종지부를 찍었다.
당초 정 회장은 북중미 월드컵 폐막 이후 물러난다는 계획이었지만, 여론의 반응이 냉담한 데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중징계(자격정지 이상)를 요구하는 등 안팎의 압박이 거세지자 사퇴 시기를 앞당겼다. 정 회장은 사퇴의 변을 통해 “모든 영광은 선수와 팬들의 덕이며, 부족함과 과오는 오롯이 저의 책임”이라 언급했다.
정 회장 재임 기간 중 쌓은 공적이 적지 않다. 천안 코리아풋볼파크 건립을 주도했고, 프로와 아마추어를 수직 계열화하는 디비전 시스템을 구축했다. A매치 중계권 장기 계약, 스폰서십 확충 등을 통해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확보한 것이나 월드컵 본선에 11회 연속 진출한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과오가 공적을 덮었다. 승부조작 가담자들을 은근슬쩍 사면하려다 국민적 공분을 샀다.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선 상식과 절차를 무시한 ‘밀실 행정’으로 축구 팬들의 신뢰를 저버렸다. 축구계를 사유화했다는 비판 여론에는 소통 대신 침묵으로 일관했다. 기업가 출신으로서 협회 행정의 합리적·효율적 시스템 구축을 강조했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만든 시스템은 자신의 독단에 의해 종종 오작동했다.
수장이 사라진 축구협회는 정관에 따라 부회장 중 한 명이 직무를 대행하는 비상 체제로 전환한다. 정 회장의 잔여 임기(2029년까지)를 대체할 새 회장을 60일 이내에 선출해야 한다.
정 회장은 떠나면서 “한국 축구가 수많은 시련을 넘어 다시 비상할 것”이라는 덕담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남긴 현실은 비상(飛上)이 아닌 비상(Emergency·非常)에 가깝다. 협회 행정 신뢰도는 바닥을 쳤고, 구성원들은 문체부 감사 등의 절차를 거치며 거듭 내상을 입을 전망이다.
13년 만에 찾아온 축구협회의 권력 교체기가 한국 축구의 혁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축구계 분열을 포함한 또 다른 혼란의 서막이 될지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축구계 인사들은 “무너진 공정성과 투명성 회복을 이끌 리더의 등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