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라면만 큰 한국 면 시장…33년 면 전문가가 전통면을 말하는 이유 [쿠킹]

중앙일보

2026.07.06 17:30 2026.07.06 19:5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메밀냉면과 평양물냉면, 간재미회냉면, 냉우동, 냉메밀소바, 콩국수, 잔치국수. 지난달 18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면사랑 미디어데이에서는 여름을 대표하는 면 요리들이 차례대로 식탁에 올랐다. 냉우동은 탱글한 식감을 그대로 살렸고, 평양냉면은 100% 메밀로 만든 면의 식감과 슴슴하면서도 시원한 육수가 잘 어우러졌다. 냉동면을 활용한 덕분에 8가지 메뉴도 짧은 시간 안에 순서대로 제공됐다. 맛과 편리함을 동시에 잡은 냉동면은 이제 집에서도 전문점 수준의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제품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전문점의 맛을 집으로 옮긴 냉동면. 그 한 그릇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닷새 뒤 서울 대치동 면사랑 서울사무소에서 정세장 대표를 만났다.

33년간 면 한길을 걸어온 정세장 면사랑 대표. 그는 "식품 제조는 농사와 같다"며 현장에서 쌓은 기술과 노하우가 좋은 면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사진 면사랑

33년간 면 한길을 걸어온 정세장 면사랑 대표. 그는 "식품 제조는 농사와 같다"며 현장에서 쌓은 기술과 노하우가 좋은 면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사진 면사랑

"식품 제조는 농사와 같습니다."
정 대표는 식품 제조를 농사에 비유했다. 농부가 매일 밭을 돌며 잡초를 뽑고 물을 주듯, 식품도 생산 현장을 꾸준히 살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좋은 제품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개선과 노하우가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다.

이 같은 철학은 면사랑의 역사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정 대표는 창업 초기 공장 부지로 사용할 충북 진천의 논밭을 직접 매입해 터를 닦았고, 공장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약 3년 동안 공장에서 생활하다시피 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일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진천 공장을 찾아 건면과 생면, 냉쫄면, 냉동면은 물론 소스와 튀김류 생산라인까지 둘러본다. 현장을 한 바퀴 도는 데만 2~3시간이 걸린다.

충북 진천 면사랑 공장에서 면을 건조하는 모습. 면은 온도와 습도, 건조 시간을 정교하게 관리해야 일정한 식감과 품질을 구현할 수 있다. 사진 면사랑

충북 진천 면사랑 공장에서 면을 건조하는 모습. 면은 온도와 습도, 건조 시간을 정교하게 관리해야 일정한 식감과 품질을 구현할 수 있다. 사진 면사랑

현장 점검이 끝나면 곧바로 시식이 이어진다.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과 리뉴얼을 준비 중인 제품은 물론 경쟁사와 해외 제품까지 함께 맛보며 품질을 비교한다. 소비자 의견과 셰프들의 피드백도 이 자리에서 공유된다. 그는 "제품은 한 번 출시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며 "소비자의 입맛과 외식 트렌드, 기술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판매 중인 동치미육수는 2005년 출시 이후, 53회 리뉴얼했다. 그는 "면사랑은 직접 개발하고 직접 생산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나온 의견을 제품에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철학은 최근 냉동면의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냉동식품은 편리하지만 맛은 다소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급속냉동 기술과 제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갓 삶은 면에 가까운 식감과 풍미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정 대표는 "예전에는 냉동식품이라면 편리함을 먼저 떠올렸지만 이제는 전문점 수준의 맛을 기대한다"며 "업계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면은 물론 육수와 소스, 고명까지 지속적으로 품질을 개선해 왔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면의 기준도 분명했다.

"좋은 면은 소비자가 먹었을 때 '면이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면은 삶은 직후가 가장 맛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노화가 시작된다. 결국 좋은 면을 만든다는 것은 삶은 직후의 식감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정 대표는 좋은 면의 조건을 면발에서만 찾지 않았다.

면사랑 100% 메밀면과 메밀장국으로 만든 메밀냉면. 면뿐 아니라 소스까지 직접 개발·생산해 맛의 완성도를 높였다. 사진 면사랑

면사랑 100% 메밀면과 메밀장국으로 만든 메밀냉면. 면뿐 아니라 소스까지 직접 개발·생산해 맛의 완성도를 높였다. 사진 면사랑

그는 "소비자는 흔히 '면이 맛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면과 소스, 육수, 고명이 함께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맛을 경험하는 것"이라며 "좋은 면은 좋은 소스와 고명까지 함께 설계돼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면사랑은 면뿐 아니라 소스와 고명도 직접 개발·생산하고 있다.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원하는 수준의 소스를 만들 업체를 찾았지만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직접 만들 기로 했다. 충북 진천 공장으로 중식당 주방장을 불러 공장 마당에서 직접 춘장을 볶으며 짜장소스를 개발한 것이 면사랑 소스 사업의 시작이었다. 정 대표는 "제품은 계속 발전해야 하는데 OEM으로는 제조 과정에서 쌓이는 노하우를 축적하기 어렵다"며 "직접 만들어야 개선도 빠르고 기술도 우리 것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무엇이든 정공법으로 부딪히는 그의 뚝심은 33년 전 처음 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정 대표에게 면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30여 년 동안 연구해 온 대상이다. 처음부터 면의 세계를 깊이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건면 사업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면의 매력을 알게 됐고, 이후 일본을 오가며 우동과 소바, 라멘 등 다양한 면 문화를 접하면서 시야를 넓혔다.

"면은 밀가루와 물이라는 단순한 재료에서 출발하지만 반죽과 숙성, 제면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만큼 정직하고 섬세한 음식입니다."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으로 건면을 꼽았다. 면사랑이 처음 시작한 제품이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시행착오와 기술이 축적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건면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제품이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 계절마다 온도와 습도가 달라진다.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정교하게 제어하며 여러 단계에 걸쳐 천천히 건조해야 한다. 그래야 탄력 있는 면발과 일정한 품질을 구현할 수 있다. 그는 "건면을 만들면서 쌓은 경험이 지금 면사랑 제면 기술의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면사랑 건면 제품. 면사랑은 건면을 시작으로 다양한 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 면사랑

면사랑 건면 제품. 면사랑은 건면을 시작으로 다양한 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 면사랑

일본에서 접한 면 문화도 지금의 면사랑을 만드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됐다. 설비를 보기 위해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우동과 소바, 라멘 전문점을 찾아다녔고, 장인들이 면을 만드는 방식과 기술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면이라는 음식이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은 세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면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높은 경지의 면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는 '수연면'을 언급했다. 손으로 수없이 늘려 만드는 수연면은 단순히 맛을 넘어 오랜 경험과 숙련된 기술, 장인정신이 집약된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다양한 면 문화를 경험한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면 시장이라고 하면 거의 라면 시장입니다."
정 대표는 "라면이 K-푸드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성장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냉면과 칼국수, 메밀면 같은 전통면 시장은 아직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을 예로 들었다. 일본은 라면뿐 아니라 우동과 소바 시장도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아 다양한 전문점과 제품군이 형성돼 있다. 지역마다 고유의 면 문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전통면이 계절 음식이나 외식 메뉴로 소비되는 비중이 높아 시장 자체가 아직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전통면 시장은 앞으로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집에서도 전문점 수준의 면 요리를 즐기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고, 냉면이나 칼국수, 메밀면도 일상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이번 여름면 캠페인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최근 여름면 시장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간편함', '전문점 수준의 품질', 그리고 '건강'이다. 면사랑 역시 맛의 균형을 깨트리는 자극적인 달고 짠맛을 경계하고, 메밀면과 냉동면, 저당·저염 제품 등 건강을 고려한 라인업을 확대하며 변화하는 소비자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 대표의 시선은 이제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로 향한다. 그는 라면이 K-푸드의 세계화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냉면과 칼국수, 메밀면 등 한국인이 즐기는 다양한 전통면도 세계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해외 소비자들은 제품 하나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식문화와 외식 경험 자체를 즐기고자 합니다. 한국만큼 다양한 면 문화를 가진 나라도 드뭅니다. 라면이 K-푸드의 문을 열었다면, 이제는 냉면과 칼국수, 메밀면, 짜장, 짬뽕, 이탈리아 파스타 등 한국인이 즐기는 다양한 면 문화가 그 뒤를 이을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송정 기자 [email protected]


송정([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