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이 피어난 연못으로 왔다. 초여름 오전, 하루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마주한 수련 한 송이. 숨이 잠시 멈추었다. 경이롭다. 꽃잎에는 먼지가 한 점도 묻지 않은 투명하고 매끄러운 빛깔이 고여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물 위에 피는 꽃을 보면 그저 ‘연꽃’이라 통칭하곤 하지만, 이 꽃은 연꽃이 아니라 수련(睡蓮)이다. 수련은 이름처럼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리고 고요히 잠을 자듯 서늘해진다. 그 잠은 게으른 휴식이 아니다. 진흙이라는 어두운 바닥을 딛고 서서, 낮 동안 세상의 햇살을 가득 머금었다가 밤이 되면 다시 조용한 내면으로 침잠하듯 스스로를 정화해온 노력의 시간이다. 세상의 부유물들을 밀어내며 끊임없이 자신을 다스려온 결과물인 것이다.
연꽃은 잎과 꽃을 물 위로 1미터 이상 쑥 올려세워 장엄한 자태를 뽐내지만, 수련은 그저 물 표면에 찰싹 붙어서 낮게 핀다. 갈라진 곳 없이 둥글고 커다란 연잎과 달리, 수련의 잎은 한쪽이 브이(V) 자 모양으로 깊게 갈라진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살아가며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 하나쯤은 품게 마련인 우리네 인간의 모습과도 닮았다.
하지만 그 상처 같은 갈라짐 속에서도 수련은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하다. 화려하게 위로 솟구치거나 겉을 포장하려 애쓰지 않아도, 제 자리를 지키며 피워낸 고운 결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아름다움이라고.
결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다. 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오랜 시간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고 쌓여야 비로소 제 모양을 갖춘다. 연꽃의 잎이 비를 맞으면 물방울을 또르르 굴려 떨어뜨리는 고고함이 있다면, 수련의 잎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받아내며 제 몸에 머금는다. 세상의 시련과 외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그토록 말끔할 수 있는 이유는, 겉면을 닦아내서가 아니라 내면의 결이 곧고 바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
살다 보면 마음 바닥에 진흙이 고이고 세상의 먼지가 내려앉는 날이 분명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식어나 위장(僞裝)이 아니라, 내 안의 결을 다듬는 일이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정체성을 맑게 유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낮은 바닥을 딛고도 이토록 말끔한’ 존재로 피어날 수 있다.
수련의 분홍빛 꽃잎 위로 투명한 결이 흐른다. 그 결을 따라 마음을 씻어본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의 주름보다 마음의 결이 고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해진다.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나는 사람,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투명함을 잃지 않는 사람. 오늘 마주한 수련이 내 마음의 결을 매끄럽게 다듬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