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 검찰총장의 물가단속 실효성 있나 규제 치우친 주지사 정책, 주민 부담만 키워 개스값·주거비·보험료·식비 등 전국 최고 수준 기업에 칼날 겨눈 검찰…시스템 개혁 우선돼야 근본적 생활비 해법 없인 정치적 역풍 불가피
개빈 뉴섬 가주 주지사가 고물가와의 ‘전쟁’을 주창하며 기업들에 대한 각종 규제에 나섰지만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섬은 2019년 1월 취임 때부터 “민생을 위협하는 고물가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큰 성과는 찾기 힘들다. 물론 팬데믹과 중동 분쟁의 변수가 있었지만, 여전히 가주는 국내에서 가장 물가가 높은 지역이다.
일단 주민들의 최대 고민으로 떠오른 것은 ‘생활비’다.
전국 최고 수준의 휘발유 가격과 치솟는 주택 가격, 전기요금, 자동차 보험료, 식료품 가격까지 오르면서 ‘살기 좋은 주’라는 명성보다 ‘살기 비싼 주’라는 평가가 더 익숙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빈 뉴섬 주지사가 최근 내놓은 각종 물가 대책을 둘러싸고 효과와 한계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지사는 최근 수년간 고물가의 원인으로 국제 유가와 공급망 불안, 정유업체의 가격 정책 등을 지목하며 소비자 보호 정책을 잇달아 추진해 왔다. 특히 정유업체의 초과이익을 억제하고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한 법안을 추진하며 이른바 ‘빅 오일(Big Oil)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정유사의 이익을 감시하는 독립기구를 설치하고 가격 급등 원인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확대했다.
그러나 개솔린 가격은 여전히 전국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남가주 일부 지역에서는 개솔린 평균 가격이 갤런당 6달러를 웃돌아 전국 평균보다 50% 더 비싼 가격을 기록했다. 공화당과 정유업계는 높은 유류세와 저탄소연료기준(LCFS), 탄소배출권 거래제, 각종 환경 규제 등이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며 뉴섬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최근에는 연방 공화당 의원들이 주정부의 연료 규제와 세금 인상 계획을 철회하라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뉴섬 주지사는 이에 대해 “유가 상승은 중동 지역 긴장과 국제 원유시장 불안 등 외부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며 “정유업체들이 공급을 조절하며 과도한 이익을 얻고 있는 점도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비브랜드 주유소를 이용할 것을 권고하는 한편 정유업체의 가격 책정 관행에 대한 감시도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감시 강화에도 총무부 자료에 따르면 주요 정유회사들은 올해 초반에 무려 1030만 달러의 로비 자금을 주정부와 의회에 쏟아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비 문제는 개솔린에만 그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의 중간 주택 가격은 전국 최고 수준이며, 주택보험료와 자동차보험료도 최근 몇 년 사이 큰 폭으로 올랐다. 전기요금 역시 산불 예방 투자와 전력망 개선 비용 등이 반영되면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돈다. 여기에 식료품 가격과 외식비까지 상승하면서 주민들의 체감 물가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가주 정부는 주택 공급 확대를 핵심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오피스 건물을 아파트로 전환하는 규제를 완화하고, 저렴한 임대주택 건설에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공급 확대에 나섰다. 최근 LA 다운타운의 LA월드트레이드센터를 512가구 규모의 저렴한 임대 아파트로 전환하는 사업도 이러한 정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소비자 보호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롭 본타 가주 검찰총장은 재난 시 가격 폭리를 집중 단속하는 한편,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사람마다 다른 가격을 제시하는 소위 ‘감시 가격(Surveillance Pricing)’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다만 검찰의 역할은 불공정 거래와 가격 담합을 단속하는 데 한정될 뿐, 시장 가격 자체를 직접 통제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일부에서는 “검찰이 들이댄 ‘칼날’이 무서워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물가 행정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보다 체계적이고 시스템에 녹아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고물가가 단순히 주정부 정책만으로 설명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높은 임금과 토지 부족, 강력한 환경 규제, 국제 에너지 가격, 팬데믹 이후 누적된 인플레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기업과 주민에게 각종 비용을 부담시키는 주정부 정책이 생활비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파장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퇴임을 앞둔 뉴섬 주지사에게 생활비 문제는 최대 정치적 시험대가 되고 있다.
높은 고용률과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정책 성과는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결국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묻는 것은 경제지표가 아니라 “왜 열심히 일해도 생활은 더 어려워졌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물음에 얼마나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느냐가 뉴섬 행정부의 마지막 평가를 좌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