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이 지난달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 폐지 행정명령을 위법하다고 판단했지만, 이번 판결이 오히려 출생시민권 제한을 재추진할 수 있는 법리적 ‘답안지’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이 행정명령 자체에는 제동을 걸면서도 의회 입법을 통한 제도 변경 가능성에는 여지를 남겼다는 분석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해당 행정명령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사안을 엄밀히 들여다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완전한 패배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행정명령 자체는 위법하다고 결론 났지만, 수정헌법 제14조가 불법체류자나 임시 체류자 자녀의 출생시민권까지 헌법적으로 보장하는지를 놓고는 대법관 사이에서 5대 4로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고 이날 보도했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의견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현행 국적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봤다. 그러나 수정헌법 제14조 자체가 불법체류자나 임시 체류자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즉 대통령의 행정명령이라는 형식은 막았지만, 의회가 법률을 개정하면 출생시민권 제한이 가능할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자신의 트루스소셜을 통해 “의회는 출생시민권을 끝내기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행정명령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입법을 통해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이번 판결에서 새뮤얼 알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닐 고서치 대법관은 출생시민권 적용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강력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토머스 대법관은 시민권 조항이 노예제 폐지 이후 흑인의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외국인 임시 체류자의 자녀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출생시민권 폐지에는 제동이 걸렸지만, 다른 강경 이민 정책들은 대법원 판결을 발판 삼아 한층 추진력을 얻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달 26일 공개한 ‘미국 우선주의’ 이민 정책 성과 60건 가운데 첫 4건으로 대법원 판결 사례를 제시했다. 범죄 혐의만으로 영주권자의 입국을 제한할 수 있는 재량권 확대를 비롯해 망명 신청 제한, 임시보호신분(TPS) 종료, 불법체류자의 제3국 추방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TPS 종료는 미국 내 합법 체류 이민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 17개국 출신 약 130만 명이 TPS에 등록돼 있었지만, 정부는 상당수 국가의 보호 지위를 종료했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이 아이티와 시리아 출신 이민자의 TPS 종료를 허용하면서 정부 조치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무자파르 치슈티 이민정책연구소(MPI) 선임연구원은 6일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법원 회기(2025~26)는 이민 문제에서 행정부 권한을 가장 강하게 확인해 준 사례”라며 “대통령에게 재량권이 남아 있는 영역에서는 그 권한의 범위가 훨씬 더 넓어졌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