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 월드컵 응원전에서 시작된 우연한 인연이 한인 시니어의 삶을 따뜻하게 바꾸고 있다.
인연은 지난달 18일 LA 한인타운 서울국제공원에서 개최된 한국·멕시코 월드컵 단체응원전 현장에서 싹텄다.
한인타운에서 30여 년간 칼갈이로 일해 온 피터 김(70대) 씨는 이날 응원전에서 한국과 멕시코 국기를 함께 손에 쥔 채 홀로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김씨가 양국의 국기를 동시에 든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그는 하루 수입이 5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버몬트 애비뉴와 베니스 불러바드 인근의 한 멕시코 교회에 꾸준히 헌금(십일조)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6일 한인타운내에서 만난 김씨는 “마음속으로는 고국인 한국을 응원했지만, 두 팀 모두 다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니어가 홀로 양국 국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눈여겨본 인플루언서 네이선 이(한국명 이주형) 씨는 김씨에게 다가가 함께 응원하자고 제안했다.
그때 이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김씨가 입고 있던 ‘칼·가위 갈아요’라는 한글 문구가 새겨진 조끼였다. 김씨가 칼갈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직감한 이씨는 자신의 칼을 맡기며 수공비로 200달러를 건넸다.
김씨는 “처음에는 그저 손님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서야 나를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행운을 만났다”고 말했다.
이들의 인연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응원전이 끝난 뒤에도 김씨의 모습이 계속 잔상에 남았던 이씨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수소문한 끝에 김씨와 재회했다. 이후 이씨는 이러한 사연을 자신의 SNS와 온라인 모금 플랫폼 ‘고펀드미(GoFundMe)’에 소개했고, 이에 감명받은 500명 이상의 네티즌이 동참하면서 6일 현재 2만1000달러가 넘는 기부금이 답지했다.
선물 받은 자전거 앞의 피터 김. 김상진 기자
이 과정에서 김씨는 생계 수단인 자전거와 칼갈이 장비 일체를 도난당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씨는 곧바로 김씨에게 1800달러 상당의 새 전기자전거를 선물했고, 모금액 중 1000달러를 우선 전달했다.
뜻밖의 돈을 손에 쥔 김씨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늘 찾던 멕시코 교회였다. 김씨는 받은 지원금 중 10%인 100달러를 교회에 먼저 헌금했다. 김씨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도와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었다”며 “앞으로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힘을 보태며 살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