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7일 혐오·역사왜곡 표현 교사·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과학 시간 중력을 학습할 때 떨어지는 물체를 보며 ‘운지’라며 키득거립니다.”
“전라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홍어, 홍어' 하며 키득댑니다.”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폭동’으로, 탱크데이 사태 이후 ‘탱크데이 파이팅’을 수업시간에 외칩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이는 혐오나 역사 왜곡 표현이 학교에서까지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는 교사들의 증언이다. 최근 지역 비하 등 논란에 휩싸였던 배재고가 직접 사과하면서 사태는 수습 국면에 들어섰지만, 이번 사안을 계기로 교실에 번진 혐오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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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70% “정치적 중립 위반 우려에 지도 꺼려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7일 발표한 ‘학교 내 혐오·역사왜곡 인식조사’ 결과, 전국 초·중·고 교사 1109명 중 89.3%가 “학교에서 혐오 표현을 접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직접 목격했다는 응답은 73.9%, 전해 들은 경우는 15.4%였다.
학교급별로는 중학교 교사의 경험률이 92.7%로 초등학교(87.4%)와 고등학교(86.4%)보다 높게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 조롱’이 88.9%로 가장 많았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혐오와 차별’(86.8%), ‘세대·직업·계층 비하’(81.8%), ‘역사적 사건 왜곡·희화화’(80.5%)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설문에 응한 교사 69.9%는 이런 혐오·차별 또는 역사왜곡 표현을 접했을 때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문제 삼을까 우려돼 지도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예컨대 5·18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희화화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가르치고 싶어도, 학부모가 교사의 정치 중립 위반을 문제 삼는 게 두려워 지도 자체를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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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단체들 “교육활동 위축, 혐오 확산 불렀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교실 내 혐오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교원단체들은 이 같은 학교 내 혐오 문화가 확산한 근본적 배경에 교권 추락으로 인한 교사의 교육활동 위축이 있다고 보고, 제도적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해법을 둘러싸고는 교육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구체적인 교육 내용과 방식에 대해선 보다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전교조는 교사 개인이 이 문제를 감당하지 않도록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영환 전교조 위원장은 “학교생활규정에 혐오·역사왜곡 표현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 근거를 마련하고, 민주시민·인권·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강주호 전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은 “학교 현장의 혐오 표현 확산 문제는 이념적 접근보다는 학생들의 기본 인성을 기를 수 있는 인성·책임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입장도 엇갈린다. 신민향 학생학부모교사인권보호연대 대표는 “어른들의 정치적 갈등이 교실로 번져 교실의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릴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도승숙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은 “이번 기회에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시민·역사교육을 내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달 민주시민교육 종합 계획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학교에서 혐오·차별 발언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