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8월 삼성전자의 기흥 반도체 생산 3라인 기공식. 오른쪽부터 이병철 창업회장, 이건희 선대회장, 한 사람 건너 이윤우 부회장이다. 사진 삼성전자
“40년 간 반도체 사업으로 쌓은 전체 이익보다 올해 한 해 이익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김용관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경영전략총괄 사장이 지난 3일 타운홀미팅에서 던진 한마디는 삼성전자의 현재를 압축한다. 7일 삼성전자는 2분기 잠정 영업이익 89조4000억원을 발표하며 인공지능(AI) 시대의 패자(霸者)로 거듭났다.
삼성 반도체의 출발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1974년 이건희 선대회장 주도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지만 회사는 자본잠식에 빠질 정도로 경영난에 시달렸다. 반도체 사업은 막대한 투자가 요구됐지만 정작 언제 수익을 낼지 알 수 없는 ‘미운 오리’였다. 그룹 안에서도 삼성 반도체로 인사발령이 나면 패자(敗者) 취급했다.
1983년 도쿄선언 이후 삼성전자가 언론에 실은 반도체 광고.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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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운명 바꾼 ‘도쿄 선언’
운명을 바꾼 결정은 1983년 2월 이뤄졌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반도체를 미래 핵심 산업으로 확신한 이병철 창업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이른바 ‘2·8 도쿄 선언’이다. 당시 시장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삼성은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조롱 섞인 평가가 나왔고, 일본 미쓰비시는 기술·자본·장비·시장·인프라 등 ‘5무(無)’를 지적하며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까지 내놨다.
하지만 이 창업회장은 “반도체 사업은 나의 마지막 사업이자 삼성의 대들보가 될 사업”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도쿄 선언 10개월 만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b D램 개발에 성공했고, 1992년에는 세계 최초 64Mb D램을 개발하며 메모리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김경진 기자
이후 일본 엘피다 메모리와 히타치, 독일 큐몬다 등 경쟁사와의 ‘치킨게임’을 버텨내며 세계 D램 시장 1위를 굳혔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출신 전직 임원은 “메모리 사업은 조금만 밀려도 파산에 이르는 잔인한 비즈니스”라며 “삼성전자는 피 웅덩이에서 헤엄치는 백조”라고 말했다.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 시장도 삼성전자의 무대가 됐다. 낸드플래시를 발명한 일본 도시바의 후신인 키옥시아는 이제 삼성을 뒤따르는 처지가 됐다. 오타 히로오 키옥시아 사장은 지난달 25일 주주총회에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1위를 되찾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약 29%, 키옥시아가 약 14%로 격차가 두 배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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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쓰며 위기 돌파
위기도 있었다. AI 시대를 맞아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주춤하며 엔비디아 공급이 늦어졌다. 반도체 수장으로 긴급 투입된 전영현 부회장은 2024년 5월 ‘반성문’을 발표하며 근원적 기술 경쟁력 복원을 약속했다. 와신상담 끝에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세계 최초 HBM4 양산·출하에 성공하며 기술 경쟁력을 회복했다.
지난 3월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7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HBM4, HMB4E 메모리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파격적인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고, 일본은 반도체 부활을 국가 전략으로 내걸고 재도전에 나섰다. 미국도 마이크론을 중심으로 자국 메모리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좌교수는 “생산 능력 측면에서는 평택캠퍼스 P5 1·2 공장 건설을 마친 뒤 업황에 맞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가동할 수 있는 기반도 신속히 갖춰야 한다”며 “기술적으로는 3차원 D램을 가장 먼저 양산해 경쟁사와의 격차를 계속 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