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조원대 캐나다 발 ‘잠수함 대전’에서 승기를 잡은 독일의 뒷배는 ‘노르웨이 함대’였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6일(현지시간) 차기 잠수함 사업(CPSP) 도입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독일의 TKMS(옛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를 지목하며 “동맹국인 독일, 노르웨이와 함께 더 큰 전략적 자율성을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캐나다가 독일·노르웨이 함대와의 연합 작전을 통한 북극해에서의 대러 억제력 증강을 더 중시했다는 의미다. 한국은 석패했지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시장으로 가는 또 하나의 판로 개척에 가까워졌다”고 자평하는 기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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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노르웨이 ‘나토 협공’ 벽 높았다
지난 6월 4일부터 5일(한국시간)까지 캐나다 서부 해상에서 진행된 한국-캐나다 해군 연합협력훈련에서 한국 해군 잠수함 도산안창호함(SS-Ⅲ, 3,000톤급)과 호위함 대전함(FFG, 3,100톤급), 캐나다 해군 잠수함 코너브룩함(SS, 2,200톤급)과 호위함 오타와함(FFH, 4,000톤급)이 전술기동을 하고 있다. 아래에서부터 도산안창호함, 오타와함, 대전함. 사진 해군
카니 총리는 이날 캐나다 동부 핼리팩스 해군기지에서 “캐나다의 차세대 잠수함 함대는 우리의 해안선과 해역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카니 총리는 “TKMS와의 우선 협상이 성공적이지 못할 경우, 캐나다는 현재 예비 공급업체인 한화의 KSS-III(장보고-III)와 협상에 착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캐나다 정부는 향후 수 개월 간 TKMS와 본 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에 돌입하게 된다. 독일이 나토 동맹이라는 ‘홈 어드밴티지’를 통해 예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이제 본선에서는 기술력과 빠른 납기 등 ‘정공법’으로 독일의 잠수함 건조 능력을 평가하게 된다는 뜻이다. 카니 총리도 “잠수함을 빠르고 대규모로 건조”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날 캐나다 정부는 성명을 통해 TKMS가 제시한 212CD 잠수함의 장점을 “전세계에서 스텔스 기능이 가장 뛰어난 잠수함”이라며 “북극 순찰(Arctic patrol)이 가능하며 나토 회원국과의 완벽한 상호 운용성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번 결정이 북극해에서 러시아의 핵추진잠수함 활동을 견제하기 위한 캐나다의 안보적 필요성을 반영한 선택이란 해석을 부른다.
실제 독일은 나토 군사동맹의 이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독일·노르웨이는 차세대 잠수함인 212CD를 공동 개발해 각각 6척씩 나눠 갖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 TKMS가 제작한다. 독일은 이에 노르웨이가 2034년 넘겨 받기로 했던 212CD 1번함을 캐나다에 먼저 주는 방안을 제안했고, 나아가 독일·노르웨이 잠수함 함대의 공동 작전을 제안했다. 캐나다가 12척을 발주한 것을 고려하면 총 24척의 대규모 잠수함 함대가 사실상 한 몸처럼 잠수함을 운용하고 유지·보수·정비(MRO)하며, 공동 작전까지 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캐나다의 발표 직후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은 “우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재래식 잠수함 함대를 구축할 것”이라며 “24척의 잠수함이 북대서양, 북극권에서 수집할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분석·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노르웨이 국방부도 “우리는 잠수함 함대를 노르웨이, 독일, 캐나다 함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3국)공동 함대로 생각하고 있다”며 힘을 보탰다.
한국으로선 사실상 독일·노르웨이의 ‘연합군’을 상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12척’ 대 ‘나토 동맹의 24척’ 구도가 굳어진 게 한국의 기술력과 빠른 납기 등 장점을 상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시 영국의 밥콕과 MRO 협력을 맺었지만, 영국이 소극적으로 지원하며 큰 빛을 보진 못 했다.
이와 관련,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7일 기자들과 만나 “잠수함 성능이나 조기 납기, 산업협력(IBT) 혜택 제안 등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결국 결정적 차이는 나토 상호 운용성 즉 훈련과 정비, 부품·승조원 공유까지 가능한 협력 부분에서 발생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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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대러견제 훈련 함께” 뜸 들인 정부
잠수함 간 상호 운용성이 이번 사업의 핵심이었단 건 지난 2월 한국·캐나다 외교·국방 장관(2+2) 회의에서 이미 예고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시 캐나다 고위 관계자는 한국 측에 캐나다 주도의 대러 견제 훈련인 ‘나누크 작전’을 거론하며 “한국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고 한다.
나누크 작전은 러시아에 대항, 북극항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캐나다가 주도하는 북미·나토의 연중 연합 훈련이다. 그간 한국은 참관 수준으로 매년 장교를 파견해왔다. 캐나다의 제안은 사실상 연합 훈련에 정식으로 참여해 달라는 뜻이자, ‘한국이 나토의 가치를 공유하는 안보 파트너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던 셈이다.
다만 정부는 당시 “참관 인원 확대를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며 원론적인 수준에서 답변했다. ‘함께 싸우자’는 캐나다에 한국은 ‘우리가 잠수함을 잘 만든다’는 점만 강조하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한 셈이다.
방사청 관계자도 “캐나다에 있어서 북극은 현실적인 안보 관심사”라며 “독일과 노르웨이는 북극 근접 지역이고 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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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아쉽지만…잘 싸웠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7일 오전 NATO 정상회의 및 몽골 국빈방문을 위해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환송나온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등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 내에는 침통한 기류가 흐르고 있지만, 이번 잠수함 대전을 통해 얻을 것도 적지 않다는 분위기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캐나다를 두 차례 방문했던 강훈식 비서실장은 7일 페이스북을 통해 “모든 역량을 쏟았던 사업이기에 아쉬움이 큰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이번 결과를 ‘졌지만 잘 싸웠다’는 위안으로만 남겨두지는 않겠다. 이번 과정을 객관적으로 되짚고자 한다”고 밝혔다.
카니 총리도 이번 결정이 한국에 “실망스러운 일(a disappointment)”이라는 걸 이해한다면서 “지난 주말 이재명 대통령과 길고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이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는 설명으로, 여전히 한국과의 안보 협력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또 “캐나다와 한국은 경제적 회복력과 안보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다른 계획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잠수함 수주는 실패했지만, 향후 캐나다 지상 장비 사업이나 차기 수상함 사업 등 새로운 방산 시장의 판로를 개척했다는 평가가 정부 안팎에서 나오는 건 그래서다.
이번에 한국의 역량을 눈여겨 본 다른 나토 동맹국들에 대한 방산 수출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이와 관련, 노르웨이는 2023년 전차 도입 사업에서 현대로템의 K2 전차 대신 독일 KMW사의 레오파르트 2A7를 선택했지만, 경쟁 과정을 지켜보던 폴란드는 K2 전차를 1000대 규모로 주문했다.
1980년대 독일에서 잠수함 기술을 배워와 배를 만들던 한국이 30여년 만에 독일 잠수함과 대등하게 경쟁을 한 점만으로도 큰 성과라는 평도 나온다. 특히 이번에 한국의 주력 잠수함인 3000t급 도산안창호함의 태평양 횡단 시연은 그 자체로 강력한 ‘쇼 케이스’가 됐다.
이와 관련, 비나 나지불라 캐나다 아시아태평양연구재단 전략 담당 부사장은 “한국처럼 반도체와 조선 등 첨단 제조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통합돼 있으며 억제력과 동맹 관리, 방어 태세의 시급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면서 “카니 총리와 이 대통령이 만나는 나토 정상회의는 한국의 실망감을 보다 광범위한 방위 산업 의제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