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단오’는 “음력 5월 5일, 창포물에 머리 감기, 그네뛰기, 씨름” 정도로 외운 명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열린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에서 만난 예술가들로부터 그들의 강릉단오제 경험을 들은 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강릉 하면 으레 ‘바다’ ‘커피’ ‘초당두부’가 먼저 떠올랐는데, ‘강릉단오제’가 새로 더해졌습니다. 지난달 15~22일 열린 강릉단오제를 찾은 이유입니다.
강릉단오제는 신을 불러 지역 공동체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 의례인 동시에, 가면극과 민속놀이, 난장(亂場)이 공존하는 축제입니다. 오래된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됐고,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습니다. 역시 강릉단오제의 핵심은 굿입니다. 굿이 무섭다고요? 종교적 시선으로만 보면 그럴 수 있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가 보면 굿은 무악과 춤, 신화, 연극이 총망라된 종합공연예술 그 자체입니다.
강릉단오제 등을 촬영한 장면으로 구성한 정연두의 영상 설치작품 ‘싱코페이션 #5’. [사진 파마리서치문화재단]
정연두,'싱코페이션 #5' 중 강릉단오제 '소제' 스틸컷, 2025, 3채널 4K 디지털 비디오와 단채널 항아리 조명 설치, 컬러, 사운드, 혼합 매체,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25) 커미션. [사진 파마리서치문화재단]
제면할머니의 넋을 불러 대접하는 제면(계면)굿, 자손 번영을 기원하는 세존굿, 용왕굿…. 약 20가지의 굿거리는 신화와 설화, 판소리를 넘나들며 인간의 출산·질병·죽음·풍요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굿당에 장식된 지화(紙花)와 지등(紙燈)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이면서, 종교의 맥락을 넘어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제를 품은 오래된 예술 언어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다시 보면 단오굿의 모든 것이 퍼포먼스 아트의 원형에 가깝습니다. 과거 세습무가 이끌어온 굿판에, 이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국악과 석사 과정 학생 등 젊은 예인들이 함께 서며 그 명맥을 이어가는 모습이 반갑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각 굿거리에는 풍성한 서사가 담겨 있지만, 그 이야기가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페라의 자막이 감동을 배가시키듯, 굿판에서도 사설을 실시간으로 따라갈 수 있는 자막이나 QR코드 안내가 있다면 몰입도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매년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해 단오제의 이야기를 출판물로 엮는 기획도 시도해볼 만합니다.
살아 있는 문화유산은 박물관 유리 진열장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관객과 호흡하며 다음 세대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유네스코 등재는 끝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유네스코가 인정한 그 유산의 가치를 지난 20년간 국가와 지자체가 얼마나 잘 가꿔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