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배고프고 죽어서 빛을 보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다. 화가, 작가, 음악가 등 예술가는 춥고 배고픈 현실을 견딘다. 대부분 죽어서도 빛을 보지 못한다.
암울한 시대의 불확실성을 견디며 청춘의 열기로 ‘주변문학 동우회’가 결성됐다. 가난한 지방 출신 초년병들은 대동강 막걸리 집에서 외상으로 술을 퍼 마셨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지도 교사 이재형 시인이 제일 먼저 청춘 시절에 생을 마감했다. ‘보경이의 비행기에는 프로펠러가 없었다’는 시는 절망의 바다를 헤엄쳤다.
동우회 회장 김원도가 동인지 1호를 남기고 복수가 차 올라 죽었다. 원도는 끼니를 굶었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문학을 위해 가난하게 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Mark Rothko의 ‘Black over Reds’ 그림을 복사한 ‘주변문학’ 동인지는 누렇게 빛 바랜 얼룩으로 세월을 견딘다. 고등학생으로 얼굴을 비친 후배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됐다.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향연 88세로 별세했다.
생존 작가 낙찰가 신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그림은 ‘예술가의 초상-두 명의 인물이 있는 수영장’(Portrait of an Artist - Pool with Two Figures, 1972)이다. 2018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9,030만 달러(약 1,019억 원)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호크니는 “그림은 감상자에게 시각적 쾌감과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본질에 충실한 화가다. 물속에서 수영하는 인물과, 물 밖에서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인물의 대비가 압도적인 미학적 완성도를 선사한다.
빈센트 고흐는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고 했다. 고흐가 살아 생전 판 그림은 단 한 점 ‘붉은 포도밭’ 뿐이다. 전적인 생활비를 동생 테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던 이 위대한 화가는 때때로 돈이 없어 물감을 먹기도 했다.
국내 미술품 중 최고가 작품은 김환기의 ‘우주’(1971)’다. “나는 그림을 팔지 않기로 했다. 팔리지가 않으니까 안 팔기로 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안 팔기로 작정했다.” 파리 유학 경비 마련하기 위해 그림을 팔려고 했지만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반세기 후 자신의 그림이 한국 미술품 중 가장 잘 팔리는 작품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20세기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중섭은 생전에는 인정 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대표작 ‘황소’가 사후에 고가로 판매돼 빈센트 반 고흐와 비교되기도 한다.
박수근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사후에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사랑받는다. 김환기와 더불어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다. 박수근은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고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 ‘빨래터’ 등 한국적인 주제를 소박한 서민의 감각으로 충실하게 표현해 한국인 화가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서민적인 한국을 주제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괴테는 독일문학 고전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아인슈타인은 괴테를 존경했다.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괴테를 평가했다. 출판된 괴테의 서적을 모두 소장하고 괴테의 흉상까지도 자택에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서양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했다.
“예술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그래서 예술가는 평범한 것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을 시작하는 동안에 그는 이미 고상해진다.” 괴테의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