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때로는 자의로 때로는 타의로 크고 작게 사색적인 질문들과 마주한다. 그것들 중에서 대단히 중요한 질문 두 가지를 꼽아 본다면, 한 가지는 ‘나는 누구인가?’고, 또 다른 것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 나는 누구라도 이 두 질문에 자기 나름대로 어느 정도로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하게, 자유롭게, 여유롭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질문은 자신의 성격과 정체성 형성에 관련된 문제다. 다음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What should I do?)’라는 질문은 자신의 천직이나 일, 취미 생활에 더 가까운 문제인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질문과 그 대답들은 속성상 매우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성별과 체질은 물론 가정 환경, 교육 환경, 지역 환경, 국가 환경, 세계 환경 등등 부지기수로 많은 변수들이 함께 상호 작용해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행운의 손길까지 더해서 신비적인 조합과 환상적인 상승효과 즉 시너지(synergy)가 발생한다. 게다가 이들 철학적 질문들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자아 성장과 정체성 확립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와 그 관계 형성에서도 심오한 영향을 준다. 한마디로 인간관과 세계관을 이루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듣는 말 중에 ‘누구 누구 집안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저 집안은 대대로 법조계 집안이야.” 혹은 “이 집안은 몇 세대가 의사 집안이야.” 또는 “그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쭉 교육자 집안이야.” 실제로 미국의 행복 연구의 권위자인 아서 브룩스도 그의 책에서 친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자신도 교수임을 언급했다. 사실상 이렇게 ‘무슨 집안’이 된 데에는 분명히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둘 다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부모의 교육 방식에 자녀가 좋든 싫든 편승해서 함께 했고, 각자의 타고난 DNA도 충분히 발현했던 것이다. 물론 다소의 행운도 분명히 따랐다.
어쩌면 무척 다행인지 몰라도 나는 교수였고, 나의 남편은 변호사에 회계사고, 내 딸은 의사로서 열심히 살고 있다. 사실상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면, 우리 가정은 ‘무슨 집안’이 결코 아니었기에 더욱 더 감사한다.
이번엔 약간 각도를 틀어서, 한 예로 유방암이 걸려서 결국 유방 절제술(mastectomy)을 했고, 이제는 완쾌된 여성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자신의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 전문가로서 성공했고, 유머 감각에 이타성도 있고, 책임감도 강하다. 아직 노처녀에 미혼이며 무신론자고, 가족도 경제적으로 도우며 꿋꿋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병소식을 들으면 너무나 황당해진다. 왜 하필이면 그나 그녀에게 이런 아픈 고통이 주어졌을까 의아해하고, 도저히 납득조차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자연의 진리가 있다: “낮에는 햇살이 ‘만인에게’ 온화하게 비추며, 밤에는 폭풍우가 ‘만인에게’ 세차게 몰아친다.” 그리고 다음처럼 위로의 말도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법이다.” 나는 이에 덧붙여서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무심하게 던져진 시련과 고통을 잘 겪어내면, 언젠가는 ‘해님과 달님’으로 거듭날 수 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묻고 대답할 때,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인의 역할과 영향이 매우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수수께끼가 애매하게 설명이 힘든 경우도 참 많다. 따라서 우리의 타고난 DNA를 잘 살펴서 꽃피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서운 호랑이를 물리치고, 우리 자신을 “해님과 달님”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용기와 결단력 또한 상당히 필요하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