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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바른 말 말고 월세나 깎아”…서구권 휩쓰는 ‘젠지 사회주의’

중앙일보

2026.07.07 13:00 2026.07.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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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행사에서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오른쪽에서 둘째)이 민주당 뉴욕주 하원의원 경선에 나선 민주사회주의(DSA) 후보 3명과 손을 맞잡고 지지자들에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8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행사에서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오른쪽에서 둘째)이 민주당 뉴욕주 하원의원 경선에 나선 민주사회주의(DSA) 후보 3명과 손을 맞잡고 지지자들에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서구 좌파 진영이 들썩이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약진하는 급진 좌파 때문이다. 비결은 젊은 층의 호응이다.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는 이들의 시선은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존 주류 좌파보다, 임대료 동결과 억만장자 증세를 내세우는 급진 좌파를 향하고 있다.



美 DSA 돌풍에…트럼프 “공산주의와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독립 250주년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독립 250주년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어는 공산주의다. 지난 4일(현지시간) 독립 250주년 연설에서도 “미국은 결코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 그것(공산주의)은 암과 같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공산주의와의 전쟁’ 프레임으로 치르겠다는 전략인데, 배경엔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DSA) 정치인의 잇따른 승리가 있다. 지난달 30일 콜로라도주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 경선에서 에티오피아 이민자 멜라트 키로스가 15선 현역 의원을 꺾었다.
미국 민주사회주의(DSA)가 지난달 30일 콜로라도주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 경선에서 멜라트 키로스가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DSA 페이스북 캡처

미국 민주사회주의(DSA)가 지난달 30일 콜로라도주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 경선에서 멜라트 키로스가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DSA 페이스북 캡처


같은달 23일 뉴욕주 하원의원 경선에서도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지지한 DSA 후보 3명이 당선됐다. 워싱턴DC 시장 후보도 DSA 정치인이 당선됐다. 지난해 11월 뉴욕시장 선거에 맘다니 당선 후 시작된 DSA 선전이 돌풍이 되고 있다.

DSA는 자본주의를 민주사회주의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비영리 법인이다. 4일 기준 미국 내 회원이 12만명인 이 단체는 “자본주의는 소유주 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를 착취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라며 “생산과 운송 같은, 삶을 지배하는 핵심 경제 동력을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 서비스와 노조 강화, 부유층에 대한 높은 세금 등을 통한 복지 국가가 이들의 구체적 목표다.

지난달 24일 영국 런던에서 잭 폴란스키 녹색당 대표(왼쪽에서 다섯째)가 지지자들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영국 런던에서 잭 폴란스키 녹색당 대표(왼쪽에서 다섯째)가 지지자들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만의 흐름이 아니다. 영국 녹색당은 지난해 9월 배우 출신 운동가 잭 폴란스키가 대표에 오른 뒤 지지율이 10%대 후반까지 오르며 일부 조사에서 노동당·보수당을 앞섰다. 독일 좌파당도 지난해 2월 총선에서 의회 입성이 어려울 거란 예상을 뒤집고 630석 중 64석을 차지한 뒤 10% 넘는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프랑스 급진 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대선 지지율 2위를 다투고 있다. 캐나다 신민주당(NDP)도 지난 4월 아비 루이스 대표 취임 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유토피아 담론 대신 “당장 내 집세 내려”

지난 3월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주 빌링엔슈벤닝겐에서 어린이 무상 보육을 내세운 좌파당의 주의회 선거 공약 포스터가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월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주 빌링엔슈벤닝겐에서 어린이 무상 보육을 내세운 좌파당의 주의회 선거 공약 포스터가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나라마다 사정은 달라도 약진 비결은 비슷하다. 유권자가 체감할 혜택을 내세운다. 맘다니 시장은 지난달 25일 규제가 가능한 주택 약 100만호의 임대료를 최대 2년간 동결하기로 했다. 무상 보육, 저렴한 판매가의 시영 식료품점 건설 등도 계획 중이다. 독일 좌파당은 최근 주 의회 선거에서 어린이집부터 대학에 이르는 교육비 전면 무상화를 공약했다. 영국 녹색당과 캐나다 NDP도 임대료 통제, 무료 버스, 공영 식료품점 건설 등을 주장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젠지(Z세대) 사회주의’라 규정했다. 그러면서 “공동선을 호소한 과거 사회주의와 달리 이번 물결은 임대료 인하나 일자리 지키기 등 개인 이익에 호소하는 ‘소매 정치’ 형태를 띤다”고 평가했다. 정치적올바름(PC),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환경 등 기존 좌파의 거대 담론을 이념적 유토피아로 보고 당장 “내 집세를 내리고, 일자리를 지켜달라”는 젊은 층의 요구에 호응한다는 것이다. 영국 녹색당조차 ‘기후위기’ 보다 등록금 절감 등을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재원은 억만장자 증세로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비슷하다. 폴란스키 대표는 1000만 파운드(약 204억원)가 넘는 자산가에 매년 1%, 더 거액에는 2%의 부유세를 매기자고 주장한다. 맘다니 시장은 뉴욕 시내 500만 달러(약 73억5000만원) 이상의 비거주 주택(세컨드하우스)에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전 계층에 대한 광범위한 증세를 주장한 기존 좌파와 달리 젊은 층의 초부유층에 대한 반감을 반영했다.



무기력한 주류 좌파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시 퀸즈 자치구에서 열린 DSA 소속 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가운데)의 뉴욕 시장 지원 유세에 나선 버니 샌더스(왼쪽)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지지자들 앞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시 퀸즈 자치구에서 열린 DSA 소속 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가운데)의 뉴욕 시장 지원 유세에 나선 버니 샌더스(왼쪽)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지지자들 앞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존 주류 좌파의 혼란상도 이들이 성장하는 디딤돌이 됐다. DSA는 공화당과 맞서기보다 뉴욕·워싱턴 등 민주당 텃밭에서 민주당 현역 시장·의원과 경쟁해 후보가 됐다. 독자 정당보다 민주당 기반에서 제도권에 진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민주당 내 리더십 공백 덕분에 가능했다. 지난 2024년 대선 패배 후 강력한 대권 주자가 없는 민주당에선 DSA를 견제할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현역 DSA 의원의 후원을 등에 업은 DSA 조직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다당제 체제인 유럽에선 급진 좌파 정당이 주류 중도좌파 정당에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은 LFI·녹색당 등과 연대한 ‘신인민전선(NFP)’으로 지난 2024년 총선에 나섰다. 영국에선 지지율 급락 등으로 지난달 22일 키어 스타머 총리가 사임한 가운데, 후임으로 유력한 앤디 버넘 노동당 하원 의원이 녹색당 정책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태세다.



트럼프에 분노하다 트럼프 닮아가다

지난 4일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워싱턴DC 인근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자유의 여신상으로 분장한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들이 반 이스라엘 집회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일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워싱턴DC 인근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자유의 여신상으로 분장한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들이 반 이스라엘 집회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주류 세력화된 급진 우파를 미러링(따라하기)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공화당 내 주요 세력으로 올라섰다. 유럽에서도 반이민을 내세운 급진 우파 정당이 집권을 노릴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이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급진화된 좌파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DSA 회원 수는 트럼프 2기 집권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트럼프 세력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원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유럽에서도 영국개혁당, 국민연합(RN), 독일대안당(AfD) 등 급진우파의 득세에 반발하며 급진 좌파가 성장했다. 독일 정보기관 연방헌법수호청(BfV)은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 “사회가 우경화되고 있다는 인식 속에 좌익 진영에서 ‘전투적 반 파시즘’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4일 독일 튀링겐주 에르푸르트에서 좌파 시위대가 급진 우파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의 전당대회를 저지하기 위해 화염을 피우며 집회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일 독일 튀링겐주 에르푸르트에서 좌파 시위대가 급진 우파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의 전당대회를 저지하기 위해 화염을 피우며 집회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런 과정에서 급진 좌파는 급진 우파를 닮고 있다. 쇠락한 백인 중산층의 상실감을 노골적으로 대변한 마가처럼, DSA도 20~30대의 불만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창구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다. 불법 이민자, PC주의자 등 불만 대상을 명확하게 한 마가처럼 DSA도 반이스라엘, 반트럼프 등을 내세우며 지지층에 급진적·포퓰리즘적 메시지를 쏟아낸다. 유럽에선 젊은 층의 불만을 담아 좌파적 무상 복지정책에 급진 우파가 내세운 반이민 정책을 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근저엔 경제적 불만이 자리한다. 국내총생산(GDP)은 증가해도 점심 한 끼가 28달러(약 4만 3000원)까지 치솟고 좋은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다. 이건 괴리감이 분노로 자리 잡고, 사회주의 극단적 처방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현실 정치의 무게

선거를 통해 제도권에 진출하는 미국 민주사회주의(DSA) 정치인들은 이제 현실에서 유권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DSA 홈페이지 캡처

선거를 통해 제도권에 진출하는 미국 민주사회주의(DSA) 정치인들은 이제 현실에서 유권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DSA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급진 좌파의 앞날이 밝기만 한 건 아니다. 현실 정치는 쉽지 않아서다. AP통신은 “유권자들은 이제 이들을 ‘선동가’가 아닌 ‘공직자’로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임대료 규제는 투자·공급을 줄여 임대료를 높일 것”이라며 “억만장자 증세도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짚었다.



이승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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