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화보 모델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성인화보사 전 대표가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과 2심의 형량이 크게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일보가 7일 확인한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고법 인천원외재판부 형사1부(부장 정승규)는 지난달 24일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성인화보 제작사 전 대표 A씨(51)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 강제추행을 포함한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것과 달리 성착취물 제작·소지 혐의만 유죄 판결했다. 함께 기소된 현 성인 화보 제작사 대표 B(47)씨에게도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고법 인천원외재판부 형사1부(부장 정승규)는 지난달 24일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성인화보 제작사 전 대표 A씨(51)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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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안 하고는 못할 진술” VS “합의 정황 존재”
1심과 2심의 판단이 크게 갈린 부분은 성인 화보 모델들의 진술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1심은 성인 화보 모델들의 진술 신빙성을 대부분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진술이 구체적이고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려운 세부적인 상황 묘사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단계에서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일관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성인 화보 모델들이 진술하는 A씨의 범행 수법이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이 진술 신빙성을 더한다고 봤다. 한 모델은 A씨가 성인 화보 촬영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가 “내가 특별히 도와주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꼭 비밀로 하라”며 성폭행 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A씨의 행태는 이 사건 성인 화보 모델들 외 다른 모델들과의 관계에서도 일부 그대로 확인된다”며 “녹취록을 보면 A씨가 한 모델에게 성관계 전 집요하게 동의 발언 녹음을 요구한다”고 했다.
반면 2심은 진술 신빙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모델들이 서로 유사한 피해 진술을 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각 진술 신빙성을 일괄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오히려 진술 형성 과정에서 외부의 개입 또는 상호 영향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또 모델들의 진술이 객관적 자료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한 모델이 화보 촬영 중 30분간 성폭행이 벌어졌다고 진술했으나, 사진 촬영 데이터에 따르면 실제 촬영이 이루어진 시간은 3분 정도에 불과한 점 등을 지적했다. 모델들이 지인을 A 대표에게 소개하거나, A씨와 성관계를 ‘디저트’로 표현한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일부 모델은) A씨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정황도 존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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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지배’ 판단 엇갈렸다
1심과 2심은 A씨와 성인 화보 모델들 사이에 ‘심리적 지배’가 성립하는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A씨가 ‘감독·보호 관계’ 하에서 모델들에게 위력을 행사해 심리적 지배에 이르렀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촬영 진행 여부에 따라 사실상 소속 성인화보 모델들의 수익과 인지도가 결정되는 지위에 있었다”며 “A씨의 위력 행사로 인해 심리적 지배 상태에 빠져 A씨의 성관계 요구를 함부로 거절하지 못한 모델들을 각 간음했다”고 판시했다. 1심은 A씨가 평소 성관계를 거부하면 “계약을 끊고 싶냐”고 했다는 진술을 심리적 지배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2심은 ‘감독·보호 관계’를 일률적으로 판단해선 안 될 뿐더러, 심리적 지배 상태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은 “일부 모델들은 전속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대부분 별도의 직업이나 수익원을 가지고 있었다”며 “단순히 업계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졌다는 사정만으로 A씨가 모델들의 장래 활동을 좌우할 수 있는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심이 사용한 ‘심리적 지배’ 개념은 그 의미와 인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 역시 충분하다 보기 어렵다”고 했다. 2심은 “원심의 논리는 ‘심리적 지배 때문에 친밀한 행동을 했다’는 점을 전제로 친밀한 행동을 설명한 뒤, 다시 그러한 친밀한 행동을 심리적 지배 상태의 근거로 삼는 것”이라며 “논리적으로 순환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모델들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소통한 카카오톡 대화를 근거로 “성적 의사결정을 제압할 정도의 위력을 행사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봤다. 또 일부 모델은 핵심 인력으로 A씨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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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화보사 전 대표 모두 상고
검찰은 성폭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A씨도 지난 1일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법원에서는 피감독자 간음죄에서 감독·보호 관계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 위력에 의한 심리적 지배가 인정되는지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