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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도 푹 빠진 제3의길…강훈식이 꺼내자 친청 격분, 왜

중앙일보

2026.07.07 13:00 2026.07.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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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당시 영국을 국빈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국 총리관저에서 블레어 당시 역국 총리와 악수하던 장면. 두 정치인은 제3의 길을 추진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4년 12월 당시 영국을 국빈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국 총리관저에서 블레어 당시 역국 총리와 악수하던 장면. 두 정치인은 제3의 길을 추진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제시한 ‘제3의 길’이 당권 경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 실장의 발언이 개인적 견해를 넘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기조이자 집권 2년차 민주당의 향후 노선을 제시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면서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강 실장은 지난 3일 민주당 워크숍에서 중도층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내세웠던 노동당의 ‘제3의 길’을 사례로 들었다. 블레어 전 총리가 이를 통해 노동당의 외연을 넓혀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처럼 민주당도 기존 지지층을 넘어 중도층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강 실장은 ‘좌도 우도 아닌, 전진’이라는 구호로 진영을 넘어 실용주의를 내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성공 사례로 함께 언급했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재선 의원은 “강 실장의 입을 빌렸을 뿐이고, 제3의 길이 결국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방향이라고 대부분의 참석자가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한 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한 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은 노동자 중심의 진보 노선과 시장 경제 노선을 결합한 실용주의 정치 노선을 뜻한다. 블레어 전 총리는 1997년 이를 앞세워 보수당의 18년 아성을 무너뜨리고 44세의 나이로 정권 교체를 이끌며 최연소 영국 총리가 됐다. 이후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사임하기 전까지 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도 연이어 승리하며 노동당의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과도한 시장 친화 정책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금융위기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노동당은 블레어 전 총리 사임 3년 만인 2010년 총선에서 정권을 내준 뒤 14년간 야당 생활을 이어가는 암흑기를 보냈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제3의 길이 정치적 의제로 떠오르곤 했다. 블레어의 브레인으로 일하던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1998년 『제3의 길』을 펴내자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모진은 이 책을 탐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대연정 제안 등은 이 같은 제3의 길을 현실 정치에서 추진한 사례로 꼽힌다.

유럽 정치를 연구한 황인정 경기대 교수는 “통합과 포용을 내세우며 진보와 보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제3의 길은 정교한 설계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운 정치 방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 실장의 제3의 길 발언은 의외의 지점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친정청래계가 공개 반발한 것이다.

정청래 전 대표 정무실장 출신인 김영환 의원은 지난 6일 유튜브 ‘박시영TV’에서 “당의 노선은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임명직 비서실장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에게 ‘당이 이렇게 가라’고 말하는 건 지난 26년 정치 생활 동안 본 적이 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블레어는 바지 입은 대처 총리라는 지적을 받았고, 제3의 길은 결국 신자유주의로 귀결됐다”며 “소득·자산 불평등이 심화됐으며, 실용주의만 앞세우다 금융위기까지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친청계인 박규환 최고위원도 같은 방송에서 “이 길도 아니고, 저 길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길을 가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김민석 의원(왼쪽)이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3대 메가프로젝트와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정청래 의원(오른쪽)은 같은 날 서울 마포구 마포구청에서 열린 유동균 구청장 취임식에 참석해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김민석 의원(왼쪽)이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3대 메가프로젝트와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정청래 의원(오른쪽)은 같은 날 서울 마포구 마포구청에서 열린 유동균 구청장 취임식에 참석해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연합뉴스

친청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강 실장의 발언이 정 전 대표의 당권 경쟁자인 김민석 전 국무총리의 ‘중도 확장론’에 힘을 싣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김 전 총리는 지난 6일 출마 선언에서 “통합하고, 연대하고, 확장하는 대통합 플랜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CBS 라디오에서 제3의 길에 대한 질문을 받자 “연대하며 확장하는 것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이 추구해온 흐름”이라고 했다.

반면 정 전 대표는 중도 확장보다는 민주당의 적통성과 코어 지지층을 강조하며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내란 척결 ▶당원 1인 1표제 등을 앞세운 지지층 결집을 핵심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논란은 여권 내부 노선 경쟁의 연장선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달 유시민 작가는 김어준씨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재명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지지층이 원했던 건 증축이었는데, 이 대통령은 재건축을 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해 친명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 최근에는 배재고 야구부 징계를 둘러싸고 “5·18이 성역이 됐다”고 발언한 뒤 사퇴한 이병태 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거취 논란까지 겹치면서 이 대통령의 통합 노선을 둘러싼 갈등도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중진 의원은 “강 실장이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제3의 길이 명·청 갈등에 새로운 불씨를 지핀 셈”이라고 말했다.



박태인.오소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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