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우크라전 탓 미국 무기공급 지연되자 유럽 자구책
미국 설계 미사일 시스템 일부 생산·정비 유럽 이전 계약도
나토 미국의존 줄인다…유럽, 장거리정밀타격무기 개발추진
이란·우크라전 탓 미국 무기공급 지연되자 유럽 자구책
미국 설계 미사일 시스템 일부 생산·정비 유럽 이전 계약도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미국 참여 없이 독자적인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를 공동개발하는 500억 달러(75조8천억 원) 규모의 계획을 출범시켰다고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이 7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3개국을 포함한 유럽 12개국은 향후 10년에 걸쳐 최소 300㎞, 일부는 2천㎞가 넘는 거리에 있는 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장거리 정밀타격무기 부문에서 유럽은 러시아에 크게 뒤져 있다.
독일의 '타우러스'와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영국명 '스톰 섀도', 프랑스명 '스칼프'가 있긴 하지만 사거리가 500㎞ 안팎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재고가 고갈된 상태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영국이 주도하는 이 이니셔티브를 통해 우리는 협력을 강화하고 유럽 동맹국들을 하나로 모아 향후 여러 해 동안 나토의 안전과 안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기존 발표 개발계획 조율해 시너지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7∼8일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계기로 공개된 이번 계획은 기존의 유럽 국가간 공동개발 프로그램들을 조율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영국과 독일은 작년 5월에 사거리가 2천㎞ 이상인 '딥 프리시전 스트라이크'(Deep Precision Strike·심층정밀타격) 무기를 공동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당시에는 명확한 목표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작년 9월 유럽 방위산업체 MBDA와 함께 '스톰섀도/스칼프'의 후속작을 공동으로 개발한다는 '스트라투스'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이번 이니셔티브가 2024년에 출범한 별도의 '유럽 장거리 타격 접근법'(엘사·ELSA)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역시 사거리 2천㎞ 장거리 미사일 개발 구상이 포함돼 있는 엘사는 2024년 7월 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가 의향서에 서명했으며 스웨덴과 영국이 3개월 뒤 합류했다.
◇ 도합 82조원 규모 방위산업 계약 계획 공개
이번 이니셔티브와 별도로 나토 회원국들은 도합 540억 달러(81조8천억 원) 규모의 방위산업 계약 계획을 공개했다. 그 중 260억 달러(39조4천억 원)는 통합 공중 및 미사일 방어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는 에어버스 A400M 수송기를 활용한 전략적 공중수송 함대 출범과 A330 MRTT 공중급유기 추가 도입 계획이 포함됐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스웨덴 방산업체 사브가 나토 회원국들에 최대 10대의 신형 '글로벌아이' 정찰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면서 "매우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글로벌아이 정찰기들이 도입되면 1982년부터 배치돼 노후화된 보잉 E-3A 센트리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14대는 약 50년만에 퇴역할 예정이다.
◇ 독자 무기 개발 박차
유럽은 미국산 부품이나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는 무기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미국의 기술적 통제나 부품을 완전히 배제한 저렴하고 소형화된 스톰 섀도급 무기를 개발하는 '브레이크스톱'(Brakestop) 프로그램을 별도로 추진 중이다.
다만 완전히 자립하기 전까지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도 병행된다.
영국은 최근 미국 록히드마틴의 '정밀타격미사일'(PrSM)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발표했다.
이를 통해 영국 육군은 내년부터 사거리 500km의 정밀 타격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댄 자비스 영국 국방장관은 "새로운 정밀 타격 무기 도입이 나토의 억제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은 독자 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미국 설계 무기를 유럽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고 정비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 미국 설계 무기 시스템 유럽 생산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번 나토 정상회의와 함께 7일 열리는 나토 국방산업 포럼에서 동맹국들은 미국 기업들이 설계한 무기 시스템의 생산·정비 권한 일부를 유럽으로 이전하는 합의안에 서명할 예정이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유럽연합(EU)의 '유럽산 우선 구매' 규정 등으로 미국 방산 기업들이 배제될 것을 우려한 전략적 타협안으로도 풀이된다.
여기에는 독일과 네덜란드가 미국 RTX사의 FIM-92 스팅어 휴대용 단거리 방공 미사일을 유럽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 벨기에·핀란드·노르웨이 등이 참여하는 AIM-120C-8 암람(AMRAAM) 미사일의 유럽 생산 확대를 위한 타당성 조사 의향서도 포함됐다.
아울러 미국,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스웨덴 등은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유럽 내에 PAC-3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정비 시설을 구축하는 의향서에 서명했다.
◇ 미국의 무기 공급 능력에 대한 유럽의 우려
이처럼 유럽 국가들이 자체 무기 개발과 현지 생산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미국이 유럽 동맹국들에 무기를 제때 공급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분석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의 장기화로 미국의 방산 재고압박이 심해지면서 미국은 올해 들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하이마스(HIMARS), 패트리엇(PAC-3) 요격 미사일 등 유럽에 약속했던 핵심 무기 납품을 지연하거나 취소했다.
특히 미국은 이란 전쟁 과정에서 전체 PAC-3 요격 미사일 재고의 약 50%를 소진한 것으로 추산됐다.
또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추산에 따르면 미국이 자국 재고를 보충하는 데에만 최소 42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유럽 외교가에서는 "우리가 미국의 1순위 고객이 아니다"라는 냉정한 평가와 함께 안보 자립의 필요성이 한층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 미국 팔란티어 AI 시스템 나토 가동 주목
한편 나토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팔란티어의 첨단 AI 기술을 군사 지휘통제에 깊숙이 도입했다는 사실도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심을 끌고 있다.
나토는 벨기에 몽스의 유럽연합군최고사령부(SHAPE)에서 AI 지휘통제 플랫폼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SS)이 지난달 22일에 '완전한 기술적 운용능력'에 도달했다고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이 시스템은 동부 전선의 러시아군 움직임을 감시하고, 취약점을 진단해 병력 배치와 타격 대상을 단 몇 분 만에 식별해 낸다.
이 시스템은 영국 국방부에는 이미 설치돼 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 등은 미국 정보기관(CIA)과의 연계 이력으로 논란이 돼 온 팔란티어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우려해 반대했으나, 영국과 스웨덴 등은 적극 수용했다.
MSS는 팔란티어가 개발한 것이지만, 지난달 30일 발표 당시 나토는 회원국 간 민감한 입장을 고려해 보도자료에 '팔란티어'라는 회사 이름을 넣지 않았다.
나토 방위산업 포럼에 온 루이스 모슬리 팔란티어 영국지사 CEO는 7일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나토가 전쟁을 치른다면 팔란티어를 사용해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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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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