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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북두칠성과 어느 집사님의 기도

Los Angeles

2026.07.0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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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세 / 은퇴 목사·ROTC 1기

주영세 / 은퇴 목사·ROTC 1기

오래전 일이다. 당시, 유학생들은 주일이 되면, 갈 곳이 없어 믿음이 있든 없든 교회로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 나와야 한국말도 할 수 있고, 그리운 한국 음식도 맛볼 수 있었다.  
 
교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문제가 있다면 자체 건물이 없어서, LA한인타운에 있던 미국 교회의 교육관을 예배 장소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배와  교회 운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매년 9월 초, 노동절 연휴가 되면 1박 2일, 때로는 2박 3일로 빅베어에 있는 미국 장로교 수양관에서 유명한 강사님을 모시고 수양회를 가졌다. 꼬박, 10년을 그렇게 했다.
 
어느 해 수양회의 마지막 날 밤, 모두 밖에 나와 손을 잡고 각자 짧게 한마디씩 하는 기도회로 수양회를 마무리 지었다. 불게 타오르던 모닥불도 다 꺼지고, 남은 것은 밤하늘에서 내려 비취는 별빛만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들리는 것은 밤의 산바람 소리뿐이었다.  산바람 소리는 조용하고 고요했지만, 몹시 찼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담요를 가져와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집사님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집사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는 것이었다. 집사님은 6·25 때 평안도에서 혼자 남으로 피난을 나온 뒤, 명문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일찍 미국에 와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번 분이었다. 하지만 워낙 성격이 온순하고 조용해서 교회에 나와도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목사님은 그분의 나이와 경력 학력,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집사로 임명했다.  
 
그런 분이 처음으로 어렵고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분이 교회에 열심히 나오시니 당연히 기도도 잘하실 수 있을 줄 알고, 정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분이 집사가 되신 후 대중 기도를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사님에게서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집사님의 기도 내용을 궁금해했다. 궁금함을 견디지 못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비트는 사람,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오마니, 북두칠성을 보니까, 오마니 생각이 납니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뚝 그쳤다.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잔디밭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거룩하고 성스러워야 할 기도회가 그만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도저히 기도회를 더는 진행할 수가 없었다.  
 
모두 기도회가 어떻게 끝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날 이후 그 집사님의 별명은 ‘북두칠성’이 되고 말았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그 ‘북두칠성 집사님’이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마 지금은 높고 높은 북두칠성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 집사님과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모든 사람이 그리울 뿐이다.

주영세 / 은퇴 목사·ROTC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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