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제조기업 ASML 글로벌 본사의 고해상도 EUV 리소그래피 시스템. 로이터=연합뉴스
네덜란드 무역사절단이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 대표 등을 이끌고 7일 베이징을 방문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미국 측에 섰던 네덜란드 정부가 방중 사절단을 보낸 건 2018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슈르트 슈르츠마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협력장관은 이날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의 회담을 마친 뒤 “회담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양국관계를 안정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었고, 상대도 이를 받아들였다”라고 밝혔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1기 시절인 2019년 미국의 압박 속에 ASML의 EUV 노광장비의 대(對)중국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2024년부터는 이보다 사양이 낮은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수출 역시 제한했다. 첨단 반도체가 절실한 중국과 사이가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최근 들어 완화되면서 중국과 네덜란드 간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트럼프 정부가 외려 유럽 동맹국들을 압박하자, 지난 2월 새로 들어선 네덜란드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재균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7일 슈르트 슈르츠마(왼쪽) 네덜란드 대외무역 개발협력 장관이 왕원타오(오른쪽) 중국 상무부장과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중국의 제재를 받은 슈르츠마 장관은 네덜란드 장관으로는 8년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슈르츠마 장관 X캡처
슈르츠마 장관은 회담 후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해빙은 아니지만, 휴전에는 이르렀음을 시사했다. 그는 X(옛 트위터)에 “왕원타오 장관과 건설적 회담을 가졌다”라며 “협력 기회를 논의했을 뿐 아니라 네덜란드 기업의 공정한 경쟁 환경, 시장 접근성, 경제적 의존도 등 우려 사항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중국도 신중한 입장이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과 네덜란드는 중요한 협력 동반자”라며 “개방과 실용의 정신으로 대화하고 협력하는 것이 양국의 공동이익”이라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7일 슈르트 슈르츠마(왼쪽) 네덜란드 대외무역 개발협력 장관이 왕원타오(오른쪽) 중국 상무부장과 환담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중국의 제재를 받은 슈르츠마 장관은 네덜란드 장관으로는 8년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슈르츠마 장관 X캡처
이번 무역사절단에는 ASML을 비롯해 17개 기업이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슈르츠마 장관은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회담을 가지고, ASML이 생산한 첨단 장비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미국 측 주장에 반박한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중국·네덜란드의 반도체 3각 분쟁에 대해 “인공지능(AI)의 목줄을 둘러싼 더 큰 전투의 서막에 불과하다”며 “ASML과 그 첨단 기술이 이러한 공방전에 휘말리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