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담을 위해 도착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튀르키예를 향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메시지가 거칠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밀착 행보가 심화하면서다. 미국과 튀르키예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중동 내 영향력을 놓고 튀르키예와 경쟁해온 이스라엘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7일(현지시간) CNN 인터뷰에서 “튀르키예 정권은 미국의 모범적인 동맹국이라 할 수 없다”며 “필요할 때만 미국 대통령에 미소 짓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세계에서 이스라엘보다 더 위대한 동맹국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은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튀르키예가 우방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튀르키예 정권을 “미국을 증오하며 ‘미국에 죽음’을 외치는 극단주의 운동인 무슬림 형제단의 영향을 받은 정권”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5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동예루살렘에서 시행된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과 튀르키예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군사·외교적으로 밀착하자 네타냐후 총리가 즉시 견제에 나선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에르도안 대통령과 양자 회담 전 “튀르키예는 우리의 훌륭한 동맹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튀르키예는 많은 전통적인 나라(동맹국)보다 미국에 더 큰 도움을 줬다”며 “여러 면에서 우리가 충실할 것으로 기대했던 (나토의) 다른 회원국들보다 훨씬 더 충실했다”고 치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튀르키예가 이란전쟁 종식을 위해 협력에 나섰고 미국과 시리아의 관계 개선에도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초청이 없었다면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고도 말했다. 이날 다른 나토 회원국들을 향해서는 이란 전쟁 당시 미국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았다며 “매우 실망했다”고 거듭 비판한 트럼프 대통령이었기에 튀르키예를 향한 이같은 발언은 주목을 받았다.
7일 튀르키예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에르도안 대통령이 맞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부터 에르도안 대통령과 여러 현안을 직접 조율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이 튀르키예산 철강 등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양국 간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두 정상의 개인적 관계는 흔들리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두 사람을 가리켜 ‘소울메이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란전쟁을 거치며 양국 관계가 한층 더 밀착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동·러시아·유럽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튀르키예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8일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앙카라를 찾은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예정됐던 이스라엘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했단 예루살렘포스트 보도가 나왔다. 이란 공습 이후에도 미국의 외교·안보 무게중심이 튀르키예에 실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특히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는 사실상 유일한 나토 회원국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추진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결코 외면하기 어려운 파트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핵심 전략자산인 F-35 전투기에 대한 튀르키예의 접근도 다시 허용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관계 복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F-35 판매 여부에 대해 곧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우리는 친구들에게 제재를 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인 2019년 튀르키예가 미국의 경고에도 러시아산 S-400 방공망을 도입하자 튀르키예를 F-35 도입 프로그램에서 제외한 바 있다.
지난 6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튀르키예 앙카라 에센보아 공항에 도착한 모습. EPA=연합뉴스
나토 내 튀르키예의 존재감 또한 한층 커졌다. 튀르키예는 미국에 이어 나토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흑해로 향하는 해상 접근권을 통제해 나토 남부 전선의 핵심 축을 맡고 있다. 여기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주도로 진행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체급을 키웠다. 뉴욕타임스(NYT)는 “튀르키예는 동서양 주요 국가 뿐만 아니라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중동을 아우르는 폭넓은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며 “나토에 없어서는 안 될 국가가 됐다”고 평가했다.
튀르키예의 국제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중동의 패권 경쟁국인 이스라엘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과 튀르키예는 중동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오랫동안 경쟁해왔다. 양국 관계는 2023년 가자 전쟁을 기점으로 급속히 냉각됐다. 지난해 4월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스라엘을 “테러 국가”로 규정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에르도안을 “위선적인 독재자”라고 맞받아치며 양국 관계는 사실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갈등은 가자지구를 넘어 시리아로도 확산되고 있다. 양국은 각각 국경을 맞댄 시리아에서 각자의 영향력 확대를 놓고 경쟁 중이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튀르키예의 세력 확장이 장기적으로 자국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