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 랜싯(Lancet) 은 한국을 고혈압 관리의 대표적인 성공 국가로 소개했다. 정부의 나트륨 저감 정책과 건강보험, 촘촘한 의료체계가 함께 작동한 결과 우리나라의 고혈압 조절률은 62%로, 세계 평균(20% 미만)을 크게 앞섰다.
이런 성과 뒤에는 의약품 혁신도 있다. 랜싯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혈압 환자의 60% 이상이 두 가지 이상의 약물을 병용하고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은 여러 성분을 하나의 알약에 담은 복합제를 복용한다. 복합제는 복용 편의성을 높여 치료 지속률을 향상시키고, 대부분 1000원 미만의 가격으로 공급돼 환자의 부담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함께 줄이는 데 기여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복합제의 상당수가 국내 제약기업이 개발한 개량신약이라는 사실이다. 개량신약은 이미 허가된 의약품의 제형이나 성분 조합 등을 개선해 안전성과 유효성, 복약 편의성을 높인 의약품이다. 특히 만성질환에서는 복약 순응도를 높여 치료 효과를 높이고, 의료비를 낮추는 데에도 기여한다.
개량신약은 단순한 제품 개선을 넘어 혁신신약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정부는 2008년 개량신약 제도를 도입해 연구개발을 지원했고, 이를 계기로 국내 제약기업들은 제형 설계, 약물전달 기술, 복합제 개발, 임상개발 역량을 꾸준히 축적해 왔다. 2025년까지 누적 172개의 개량신약이 허가됐고, 관련 시장도 연간 1조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 이러한 경험은 혁신신약 개발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개량신약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혁신적 신약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환자의 미충족 의료수요를 해결하며 기술과 연구개발 역량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창조적 혁신으로 향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과정이다.
창조적 혁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혁신이 쌓여 큰 도약을 이룬다. 개량신약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치료 혁신인 동시에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혁신의 토대다. 이러한 노력이 쌓여 대한민국은 그동안 43개의 신약을 개발했고, 작년에는 20조원 이상의 제약바이오 기술 수출을 이뤄냈다. 이는 개량신약을 통해 축적된 연구개발 역량과 기술 혁신의 성과가 혁신신약 개발과 해외 시장 공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제약바이오의 미래를 여는 힘, 그것이 개량신약의 가치다. 개량신약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과 지속적인 지원은 단순한 약가 우대가 아니라 미래 혁신신약과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개량신약을 통해 혁신신약을 많이 만들어내는 나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