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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부패한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오스 2세

중앙일보

2026.07.08 08:04 2026.07.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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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스파르타의 정치가 아게실라오스 2세(Agesilaos II, 기원전 440~360·사진)는 국왕 아르키다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둘째 아들이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이 없었다. 그는 여느 스파르타의 어린이들처럼 소년 학교인 아고게(Agoge)에 들어가 체력을 단련하고 수양 교육을 받았다. 선천적 하체 불구였지만 역경을 의지를 실천하는 계기로 삼았다. “장애인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신의 관심사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아게실라오스는 스파르타의 교육대로 검소하고 우국적인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파르타인들이 행복했던 것은 물자가 풍요로워서가 아니라 소망이 소박했기 때문이었다. 부왕이 죽고 형 아기스가 왕위에 오르자 아게실라오스는 민선장관에 올랐다.

그의 초기 정책은 엄정하고 공의로웠다. 그러나 왕인 형을 등에 업고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세금을 거두어 자기의 재산을 늘리고자 1년을 12개월에서 13개월로 늘려 9년 동안 해마다 1개월치의 세금을 착복했다.

그런데 운명인지, 형의 아들인 왕자가 스파르타에 망명해온 명장 알키비아데스와 형수 사이의 불륜에서 태어난 사실이 밝혀지자 아게실라오스가 왕위에 올랐다. 그의 말년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학정을 저지를 때면, “오늘 하루 동안 법은 잠들었다”는 말로 자기의 부패를 덮었다. 이집트의 용병대장이 되어 승전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낯선 항구에서 노령으로 객사했다. 그때 나이가 84세였다. 그의 생애를 돌아보며,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탄식했다. “정치인은 때를 잘 타고 나야 한다.”

부패는 참으로 징글맞게 역사를 괴롭힌다. 그러면서도 사라지지 않는데, 돈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부패가 때로는 삶의 편의를 제공하고, 주는 무리나 받는 무리가 늪지 식물처럼 공생 관계이기 때문이다. 부패는 공직의 출현과 함께 시작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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