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노명우의 골목길 서점에서] 인간선언의 저자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2026.07.08 08:12 2026.07.08 20:2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노명우 아주대학교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교수

노명우 아주대학교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교수

화제의 서울국제도서전이 끝났다. 이런저런 후일담이 오가는 걸 보면 화제였음은 분명하다. 티켓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도서전이 시작되기도 전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을 눈에 담으면 이 행사는 대성공이었다. 독서인구가 늘어났으면 하는 희망을 섞어 출판계가 유행어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듯한 ‘텍스트 힙’이라는 단어가 현실임을 증명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인간과 AI 함께 쓴 도서전 주제문
기계 베끼지 않겠다는 것이라니
저자의 종말 자초한 것 아닌가

다른 시선도 있다. 성인독서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데 도서전만 대성공하는 기묘한 풍경의 핵심 원인이 도서전의 과도한 상업화라고 진단하는 사람은 코엑스 대신 대안적 도서전인 ‘서울 제대로 도서전’이 열린 노들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서전이 ‘사유화’되었음을 우려하며 ‘사유화’의 정당성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텍스트 힙’이라는 단어에 가려 그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저자 및 강연자’가 326명이나 된다고 한다. 도서전의 출발 목적이 출판사와 작가가 만나 판권과 저작권을 거래하는 시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도서전에 참석한 저자가 상당한 규모라는 점은 고무적이다. 쓰인 글이 개인의 책상을 넘어서 세상에 알려지는 전 과정을 우리는 폭넓은 의미의 출판이라 한다. 출판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에 불과했던 한 인간은 저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다. 그 단어에서 풍겨나는 사회적 존경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쓴다고 누구나 저자의 권위를 획득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이 저자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글을 발표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탄압을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갈릴레오는 태양 중심설을 옹호하는 논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교회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출간한 후 영국 의회와 교회에 의해 부도덕의 온상으로 지목되며 정치나 종교에 관한 글을 본명으로 출판하는 것을 전면 금지당하기도 했다.

저자라는 개념은 권력기관이 위험한 사상을 통제하고 처벌한 대상을 식별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로 발명된 것이다. 사상 통제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자기 목소리를 텍스트화하여 공개하는 행위가 출판이고, 출판된 내용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저자이다. 출판과 저자의 이름에 새겨진 사회적 존경의 역사적 맥락은 그것이다. 출판된 글의 표지에 항상 글 쓴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텍스트로 인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글에 무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저자임을 온 세상에 밝히는 선언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올해의 주제로 ‘인간선언’을 선정하고 주제문을 발표했다. 그 주제문을 쓴 주체도 당연히 기명으로 적혀 있는데 한 인간 작가가 AI 모델 클로드 소네트 4.6 그리고 제미나이 3과 공동 작성했다고 한다. 인간의 AI와의 콜라보라니 힙하기 그지없다. 도서전에서만 구할 수 있기에 성수동 팝업 스토어처럼 오픈런을 만들어냈다는 굿즈만큼이나 트렌디하다. 그 ‘인간선언’은 욥과 장자를 예로 들면서 “인간은 확률이 정해준 답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확률적 추론기계인 AI와 인간의 협업으로 도달한 결론이 그것이라니 기묘함을 떨칠 수 없다. 그 주제문은 이렇게 끝난다. “지금, 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서울국제도서전은 AI 모델도 인간과 함께 ‘인간선언’을 할 정도로 인격을 갖춘 저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주체로 여기는 걸까? AI 알고리즘이 뱉어낸 텍스트를 인간이 윤문하고 세상에 내보냈다면, 그 글의 저자는 인간인가 아니면 AI인가? 이 의문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공동 작성자 클로드 소네트 4.6도, 제미나이 3도 사라지고 소네트 5와 제미나이 3.5가 글을 쓰는 세상이니 말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실존적 인격’이 없기에 베른협약상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AI 모델에게 주제문의 공동 작가로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도서전은 AI와 인간의 협업이라는 트렌디한 수사가 탐이 나 ‘텍스트 힙’을 얻으려고 ‘저자성의 종말’을 기꺼이 내준 파우스트적 거래를 한 건 아닌가? 주제문이 물으니 답합니다. “지금, 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노명우 아주대학교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교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