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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그래도 미국의 민주주의는 살아있다

중앙일보

2026.07.08 08:16 2026.07.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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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지난 7월 4일 열린 미국 독립선언 250주년 기념행사는 미국 역사가 지닌 다양성과 치열함, 복잡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현대사를 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 간에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독자들은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주 행사는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한편에선 의회의 초당적 행사인 ‘아메리카 250’ 행사가 열렸고, 다른 한편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프리덤 250’ 행사가 있었다. 불꽃놀이는 훨씬 더 화려했지만, 트럼프의 연설은 민주당을 향한 악의적인 공격으로 얼룩졌다.

양극화된 워싱턴 독립기념행사
미 전역, 민주주의 축제 열려
동맹도 회복탄력성 신뢰 확고

미국 역사를 둘러싼 양극화된 논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7년 뉴욕타임스는 미국 건국년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을 기념하는 1776년이 아니라 흑인 노예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1619년이라는 주장을 담은 탐사보도 시리즈 ‘1619 프로젝트’를 실었다. 이에 트럼프 1기 행정부는 극단적인 애국 교육 ‘1776 위원회’로 맞대응했고, 미국의 건국 스토리에서 노예제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워버리려는 듯한 시도를 했다.

사실 독립선언서 자체도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독립선언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파격적인 명제를 통해 계몽주의 이상을 담았고, 이는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정치적 정당성의 개념을 바꾸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지 3세 국왕이 노예 반란을 부추겼다”는 표현이 담겨있는 등 그 자체로 부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주말 기념행사를 유심히 지켜본 이들이라면 독립선언서가 지닌 막강한 힘을 느꼈을 것이다. 250년 전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언어를 작성하면서 여성 또는 유색 인종의 미국인이 시민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그들이 심은 씨앗은 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불의를 무너뜨리는 나무로 자라났다.

사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그린 미국의 국가운영 방식은 탑다운의 중앙집권적 방식이 아닌 행정·입법·사법부, 주 및 지방 정치인, 시민사회, 언론을 통한 끊임없는 견제의 모델이었다. 1830년대 미국 민주주의를 연구했던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의 해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토크빌은 당시 미국을 방문하기 전, 국민에 의한 통치라는 이 새로운 정부 형태가 고대 아테네와 로마처럼 결국 중우정치로 이어져 자유를 파괴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미국을 직접 둘러본 후, 그는 교회, 지방 정부, 언론, 무수한 시민단체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던 대중 선동적 독재를 막아주는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시각은 당시 크게 주목받진 못하지만, 미국 전역에서 250주년을 기념하는 방식을 보면 그것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리는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현대 미국인들은 미국 혁명사를 공부할 때 ‘1619 프로젝트’나 ‘1776 위원회’ 같은 극단적인 해석이 아닌 주류 역사서를 본다.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켄 번즈는 그의 최신 시리즈인 ‘미국 혁명(The American Revolution)’에서 미국 독립이 지닌 이상주의와 희생, 세계적인 영향력을 다뤘다. 이 다큐멘터리는 또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문장을 작성한 이들이 정작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던 모순 또한 가감 없이 보여줬다. 과거를 직시하며 인간의 취약함과 국가의 결점을 인정하고, 오늘날 모두가 누리는 정의의 씨앗을 심어준 이들의 희생과 유산을 기리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심일 것이다.

필자는 현재 호주에 살고 있다. 한국과 호주를 위시한 전 세계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지표로 생각한다. 물론 최근 동맹국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데엔 당연한 이유가 있다. 일본, 호주 및 유럽 등지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도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과 한국에서 미국과의 동맹에 대한 지지는 사상 최고 수준이며 호주에서도 그렇다. 미국 정치의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민주주의와 경제가 보여주는 역동성과 회복 탄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지난 4일 미국 전역에서 펼쳐진 여러 독립기념 행사들 속에서 그 증거를 보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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