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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터] 설득에서 공감으로…인권운동의 흐름이 달라진다

중앙일보

2026.07.0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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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인터뷰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지난 3일 인권운동의 새로운 흐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신영 기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지난 3일 인권운동의 새로운 흐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신영 기자

“이제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시대가 아니라 함께 경험하고 공감하는 시대입니다. 인권운동 현장도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인권운동은 차별을 설명하고 편견을 바로잡는 데 집중했다. 교육과 세미나, 캠페인이 대표적인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전시와 공연, 퍼포먼스처럼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는 활동이 늘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를 설명하기보다 경험하고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인권운동의 새로운 방식이 되고 있다.

지난 3일 연구실에서 만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키워드로 ‘젠더 정의(Gender Justice)’를 꼽았다. 올해 오픈소사이어티재단(OSF)과 다음세대재단이 추진하는 ‘인권운동 및 활동 지원사업’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번 사업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그는 “인권운동은 의제뿐 아니라 운동의 방식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앞으로 인권운동의 핵심은 ‘소수자 안의 소수자’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사람들을 설득하기보다 함께 공감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홍 교수와의 일문일답.



‘다양한 삶’ 포괄하는 인권의 언어



Q : ‘젠더 정의(Gender Justice)’라는 용어가 조금은 생소합니다.

A : “아직은 낯선 용어가 맞습니다. 학계와 현장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이지만 널리 정착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젠더’는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별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정의’라는 개념이 더해지면서 단순히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별과 불평등, 억압과 폭력, 권력의 남용까지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Q : 성평등보다 더 넓은 개념이라는 뜻인가요.

A : “예전에는 성평등이라는 표현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젠더 때문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더 폭넓게 설명하기 위해 ‘젠더 정의’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성별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실질적인 평등까지 함께 고민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Q : 심사 과정에서 선발된 팀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요.

A :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운동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대중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사업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존 방식에 머무르지 않는 실험적인 체험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기성세대가 쉽게 떠올리기 어려웠던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죠.”


Q :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A : “예를 들어 호신술 프로그램도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젠더 정의 사업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신체적·심리적 자립을 돕고, 젠더 관점에서 취약한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Q : 사업의 형태보다 문제의식에 무게를 둔 것 같습니다.

A : “또 하나의 특징은 장애여성, 농인 성소수자처럼 여러 차별이 동시에 작동하는 문제를 파고든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소수자 중의 소수자’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교차차별 혹은 복합차별을 해결하는 구체적인 활동도 점차 나타나고 있어요. 기존의 인권활동이나 학계에도 자극이 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Q : 그렇다면 인권운동 지원사업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A : “숫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물론 영향력을 측정하려는 시도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중하면 의미 있는 실험들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젠더 정의는 사회 인식과 문화의 변화를 다루는 영역이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젠더 정의’ 여성만의 의제 아니다



Q : 한국에서는 젠더 담론이 갈등의 언어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A : “문제를 드러내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계몽하거나 가르치려는 방식은 오히려 거부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경험과 공감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들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죠. 온라인에서는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갈등을 키우기 쉽습니다. 반면 오프라인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함께 경험하는 활동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듭니다.”


Q : 젠더 이슈는 노동이나 돌봄, 장애 등 다양한 영역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A : “바로 그래서 ‘젠더 정의’라는 개념이 필요한 것입니다. 젠더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성 역할과 권력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노동과 돌봄, 장애, 성소수자 문제까지 모두 연결됩니다. 특정 집단만을 위한 의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Q : 조직이나 규모를 앞세우기보다 프로젝트성 팀 단위 활동도 눈에 띕니다.

A : “인권운동의 다변화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명망가나 대형 시민단체가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 역할은 지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큰 조직은 많은 사람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습니다. 반대로 작은 프로젝트들은 기존 운동이 놓쳤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이나 일상, 취미 영역에서 인권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이러한 다양성이 인권운동의 경쟁력이 될 겁니다.”


Q : 젠더 정의 지원사업이 한국 시민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십니까.

A : “한국은 경제와 민주주의 모두 매우 빠르게 발전한 나라입니다. 젠더 분야 역시 서양과 비교해보면 무척 변화의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OSF와 같은 글로벌 재단과의 협력은 단순히 재원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다양한 시민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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