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화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지난 4일 강릉 테라로사 본점에서 열린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이하 알랭 뒤카스 쇼콜라)' 한국 론칭 행사에서 세계적인 셰프 알랭 뒤카스는 프랑스에서 완제품을 수입하는 대신 한국에서 직접 생산하기로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한국 첫 매뉴팩처(Manufacture)를 세운 곳은 서울이 아닌 강릉이다.
세계적인 셰프 알랭 뒤카스. 그는 한국 첫 매뉴팩처의 터전으로 강릉을 선택하며 ″바다와 커피를 품은 상징적인 도시″라고 말했다. 송정 기자
알랭 뒤카스는 "강릉은 바다와 커피를 품고 있는 상징적인 도시"라며 "이곳에 매뉴팩처를 세우기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초콜릿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화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소비자들의 높은 미식 수준과 호기심이 한국에서 직접 생산하기로 한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세계 미식계에서 알랭 뒤카스는 '살아있는 전설' '셰프들의 셰프'로 불린다. 세계 최초로 세 개의 레스토랑에서 동시에 미쉐린 3스타를 받았고, 현재까지 총 17개의 미쉐린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재료의 본질과 맛의 균형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미식 철학을 완성해 온 그는 원재료가 가진 고유한 개성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요리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 같은 철학은 초콜릿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2013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는 초콜릿을 단순한 디저트가 아닌, 재료와 장인정신,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미식으로 정의한다. 좋은 원료를 선별하고, 원재료가 가진 맛과 질감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알랭 뒤카스가 추구하는 가치다.
재료 본연의 맛과 질감을 존중하는 알랭 뒤카스의 미식 철학은 초콜릿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사진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
알랭 뒤카스 쇼콜라의 핵심 철학은 '카카오 투 타블렛(Cacao to Tablet)'이다. 카카오를 하나의 농산물로 바라보고, 원산지의 개성과 풍미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카카오가 자란 기후와 토양, 품종은 물론 발효와 건조 과정에 따라 향과 산미, 질감이 달라진다. 같은 카카오라도 어느 산지에서 어떻게 재배되고 가공됐는지에 따라 초콜릿의 기본적인 풍미와 구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의 철학이다.
산지의 개성을 인위적으로 균일하게 만드는 대신, 각각의 카카오가 가진 특성을 최대한 살려 초콜릿에 담아낸다. 이를 위해 카카오 선별부터 로스팅, 분쇄, 콘칭 등 초콜릿이 완성되는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하며 원재료 본연의 향과 풍미를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강릉 테라로사 본점에 문을 연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의 입구. 사진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
한국 첫 생산 거점으로 강릉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릉에서 시작한 테라로사는 생두를 직접 선별하고 로스팅하며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만들어온 브랜드다. 원재료를 이해하고 생산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이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같았다는 설명이다.
한국 파트너사인 김의열 학산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파리에서 경험하는 알랭 뒤카스 쇼콜라의 철학과 맛, 품질, 그리고 공간의 감성까지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지난 1년 동안 프랑스 본사와 함께 생산 환경을 구축했다. 원재료 관리부터 생산 환경, 온도와 습도, 제조 공정, 제품의 외관과 맛은 물론 매장 디자인까지 프랑스 본사의 기준에 맞춰 검증을 거쳤다. 한국 초콜릿 셰프들은 파리 매뉴팩처에서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 셰프들도 강릉을 찾아 생산 공정과 품질 기준을 직접 점검했다.
김 대표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알랭 뒤카스가 추구하는 장인정신과 품질 철학을 배우는 시간이었다"며 "20여 년 동안 좋은 원두와 품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온 테라로사의 경험 위에 알랭 뒤카스 쇼콜라가 더해져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프리미엄 미식 경험을 제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 매뉴팩처의 김기도 생산총괄은 "지난 1년은 브랜드의 철학을 한국에서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 배우고 다듬어온 시간이었다"며 "매장을 만들고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가 추구하는 맛과 품질을 그대로 구현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알랭 뒤카스 쇼콜라의 초콜릿. 카카오 산지의 개성에 따라 다른 맛이 특징이다. 사진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
김 총괄의 설명이 끝나자 테이블 위에 초콜릿이 놓여졌다. 초콜릿을 한입 베어 물자 먼저 카카오의 짙은 향이 퍼졌고, 뒤이어 산뜻한 산미와 긴 여운이 입안을 채웠다. 단맛을 앞세우기보다 카카오 산지마다 다른 개성과 풍미를 담아내려는 브랜드의 철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이번 강릉 매뉴팩처는 생산 시설과 리테일, 카페가 함께 들어선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다. 방문객들은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살펴보고 대표 컬렉션과 디저트, 음료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초콜릿과 디저트, 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매장 내부. 사진 알랭 뒤카스 쇼콜라 파리
알랭 뒤카스 쇼콜라는 강릉을 시작으로 오는 8월 서울 성수동에 약 2644㎡(800평)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예정이다. 김 대표는 "강릉이 스페셜티 커피의 도시였다면 앞으로는 커피와 초콜릿이 함께하는 새로운 프리미엄 식문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와의 협업, B2B 사업 확대는 물론 한국에서 축적한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협력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