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열린광장] 미세스 스미스와 ‘김치마담’

Los Angeles

2026.07.08 18:3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해마다  6·25전쟁을 기억하는 때가 오면, 내 마음속에는 늘 한 사람이 떠오른다. 한국 사람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했던 한 미국 여인. 이름은 세월 속에 희미해졌지만, 그녀의 따뜻한 마음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했고, 휴전 후에도 군에 남아 장교로 복무했다. 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부족했다. 국토는 폐허였고 군대도 현대식 장비와 기술이 절실했다.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으로 미국의 대규모 무상 군사원조가 이루어졌다. 새 장비를 운용할 초급장교들을 미국 각 군사학교에 보내 교육을 받게 했고, 나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뉴저지의 미 육군 통신학교에서 1년간 레이더와 통신 교육을 받았다.
 
낯선 미국 생활 속에서 주말이면 카메라를 들고 영화에서만 보던 풍경을 찾아다니며 향수를 달래곤 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외출하려 숙소를 나서는데 서른대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미국 여인이 어린 남매와 함께 장교 숙소 앞에서 “Let's Go to Church”라고 적힌 작은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녀의 권유로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린 뒤 집으로 초대를 받아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식탁 옆에는 군복을 입은 한 남자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남편이십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인 뒤 조용히 말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제 남편입니다.” 순간 식탁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을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한국 사람을 만나면 남편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아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후 우리는 그녀를 따라 교회에 다녀온 후 함께 식사하거나 공원에서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김치입니다.”
 
며칠 뒤 그녀는 직접 만든 김치를 내놓았다. 한국 영사관에 전화해 담그는 법을 배웠지만 배추를 구하지 못해 양배추로 대신 만들었다고 했다. 정통 김치는 아니었지만, 그 한 접시에는 한국을 향한 사랑과 전쟁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그 김치를 세상 어느 진수성찬보다 맛있게 먹었다.
 
그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영어가 서툴던 시절이라 성이 '스미스'였다는 것만 남아 있다. 우리는 늘 그녀를 “맴(Ma’am)”이라 불렀고, 어느새 모두가 애정을 담아 ‘김치마담’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녀도 그 이름을 무척 좋아했다.
 
훗날 미국에 이민 온 뒤 나는 그 동네를 다시 찾아가 보았다. 혹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시의 모습은 너무나 변해 있었고 끝내 그녀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제는 긴 세월이 흘렀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녀는 하나님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한국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지만,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서로를 가족처럼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남겼다.
 
“미세스 스미스, 아니 우리의 ‘김치마담’. 당신이 보여주신 사랑은 한미동맹의 어떤 조약보다도 따뜻했고, 저는 그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