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드블루, 2010년 6월 17일 새벽
동녘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물들던 새벽. 부산의 한 병원 응급실 입구에 자동차 한 대가 급정거했다. 시동도 끄지 않은 채 문이 열렸다. 한 여자가 다급하게 뛰어나와 조수석의 다른 여자를 거칠게 끌어냈다. 그러고는 늘어진 신체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다.
“제 동생 좀 살려주세요! 빨리요!”
의료진이 황급히 달려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호흡을 돌리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잠시 후 병원에 도착한 노모의 울음소리가 응급실을 메웠다. 사망자의 이름은 손서영(가명), 나이 40세.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 검안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다음 날 유골은 해운대 청사포 앞바다에 뿌려졌다. 한 사람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떠내려간 누군가의 죽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석 달 뒤였다. 보험사 창구 앞에 그 여자가 나타나면서부터였다.
“손서영씨, 잠깐 얘기 좀 나누시죠”
“손서영이라뇨. 제가요?”
“지금 이 시간부로 당신을 긴급 체포합니다.”
손서영. 한 줌의 재가 돼 파도에 흩어진 여인의 이름이다. 죽은 여인을 경찰이 체포한다니, 이 기괴한 연극의 전말은 무엇일까.
#2 7년의 사랑과 24억
남자는 얼마 전 오랜 연애를 끝냈다.
스무 살, 남자는 재수생 때 처음 그녀와 만났다.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여자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남자는 그를 짝사랑했고 보란 듯이 명문대에 합격한 뒤 마음을 고백했다. 열세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연애가 그렇게 시작됐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된 후 먼저 찾아오는 쪽은 대부분 그녀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차를 몰고 올라와 밥을 사고, 선물을 쥐어주고, 용돈을 챙겼다. 남자가 군대를 다녀와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두 사람은 7년간 연인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그의 나이도 어느덧 스물일곱, 현실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여자 친구는 이미 마흔. 여자친구에게 숨겨둔 딸이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더 이상 함께 그리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차갑게 이별을 고했다.
“이제 나도 취직해야지. 솔직히 결혼 생각도 안 할 수 없고.”
“나 너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아버지 돌아가실 때 상속받은 땅 좀 있는 거 알지? 그거 한 20억원은 받는다더라. 그 땅 팔아서 같이 외국으로 나가 살자. 응?”
여자는 다섯 달을 매달렸다. 그 사이 남자는 같은 과 후배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매일 문자폭탄이 이어지던 어느 날, 사진이 하나 전송됐다. 천천히 아래로 내리자 검은 화면 속 몸을 웅크린 태아의 윤곽이 드러났다. 초음파 사진이었다. 곧이어 그의 새 여자친구에게도 같은 사진이 전송됐다.
“우리 아기가 세상에 나오지 않길 바라는 거야? 그럼 내가 아기와 함께 없어져 줄게.”
급기야 여자는 남자 앞에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다. 간신히 약병을 빼앗아 최악의 사태는 막았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녀에게서 연락이 뚝 끊긴 것이다. 매일 쏟아지던 문자폭탄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그렇게 두 달을 보낸 어느 날,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찾아왔다.
“경찰입니다. 손서영씨 잘 아시죠?”
경찰은 손서영을 살인 및 사기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녀가 ‘손서영’ 앞으로 가입된 사망보험금을 타려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남자는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망보험금이라면 서영이가 죽었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체포된 손서영은 누구죠? 누가 손서영의 행세를 하다 잡힌 건가요?
(계속)
영화 ‘화차’보다 잔혹한 현실,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5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