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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지 않아도 받지 않아도 우리 마음을 바람이 전해주길”…‘윈드 폰(wind phone)’

Los Angeles

2026.07.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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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 애도 위해 일본서 시작
남가주 곳곳에도 자리잡아
“연결은 안되니 바람이라도”
상실과 슬픔 치유 공간으로
암 전문병원인 시티 오브 호프 내 ‘가든 오브 호프’ 정원에 설치된 ‘윈드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전하며 슬픔을 치유하는 추모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암 전문병원인 시티 오브 호프 내 ‘가든 오브 호프’ 정원에 설치된 ‘윈드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전하며 슬픔을 치유하는 추모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화선도 없고 전기도 애초부터 연결된 적이 없다. 신호음도 들리지 않고, 당연히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수화기를 드는 순간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 연인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말을 건넬 수 있다.
 
‘윈드폰’은 실제 통화가 이뤄지는 전화기가 아니다. 오래된 다이얼식 전화기를 이용해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전하는 추모 공간이다. 이용자들은 수화기를 들고 미안했던 마음과 그리움, 사랑, 후회 등을 말로 표현하며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최근 국내에서 이런 윈드폰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남가주 곳곳에도 다양한 사연을 품은 윈드폰이 설치돼 눈길을 끌고 있다.
 
첫 시작은 일본이다.
 
2010년 일본의 정원 디자이너 이타루 사사키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촌을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정원에 전화기를 설치했다. 그는 “내 생각은 일반 전화선으로는 전해질 수 없었기에 바람을 타고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이듬해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2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윈드폰은 유족들의 추모 공간으로 널리 애용됐다. 이후 미국과 유럽, 호주 등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며 상실을 치유하는 상징이 된 것이다.  
 
남가주에서는 조슈아트리의 윈드폰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콜린 캠벨과 게일 러너 부부는 2019년 여름 새 별장으로 향하던 중 음주운전 차량과 충돌해 딸 루비(17)와 아들 하트(14)를 한꺼번에 잃었다.
 
극심한 슬픔 속에 있던 부부는 사막 한가운데 작은 나무 전화부스를 만들었다. 내부에는 오래된 검은색 다이얼식 전화기 하나가 놓여 있다. 전화선은 어디에도 연결돼 있지 않지만, 수화기를 들면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마음껏 전할 수 있다.
 
캠벨은 “처음 윈드폰을 사용했을 때 마치 아이들과 실제 통화하는 것처럼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며 “그 경험이 큰 위로가 됐고 다른 유족들도 같은 위안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윈드폰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이 전화기를 조슈아트리 리트리트센터로 옮겼다.
 
샌하신토 산맥의 아이딜와일드에도 특별한 윈드폰이 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밀러드 엘스턴은 두 명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직접 나무 벤치와 전화기를 설치했다. 키 큰 소나무 아래 놓인 벤치에는 해 질 무렵 따뜻한 햇살이 비친다. 그는 “이곳에서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며 “갈 곳이 없거나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때 바람에게 내 이야기를 맡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샌게브리얼 산맥의 라이트우드에는 파란색 윈드폰이 안개 낀 숲속 도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샌게이브리얼 산맥의 라이트우드 인근 도로변 숲속에는 푸른색 윈드폰. 이 윈드폰은 1995년 실종된 뒤 지금까지 행방이 밝혀지지 않은 28세의 로버트 번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여동생 로리 캐슬린 번이 만들었다.

샌게이브리얼 산맥의 라이트우드 인근 도로변 숲속에는 푸른색 윈드폰. 이 윈드폰은 1995년 실종된 뒤 지금까지 행방이 밝혀지지 않은 28세의 로버트 번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여동생 로리 캐슬린 번이 만들었다.

이 전화기는 1995년 28세의 나이로 실종된 뒤 지금까지 행방이 밝혀지지 않은 로버트 번을 위해 여동생 로리 번이 설치했다. 그녀는 오빠가 납치돼 살해됐다고 믿고 있다.
 
전화기 옆에는 방문객들이 직접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공책도 있다. 표지에는 “원한다면 날짜와 사는 곳,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적어 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름도 사연도 다른 사람들이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 된 것이다.
 
듀라테의 세계적인 암 전문병원 시티 오브 호프 정원에도 윈드폰이 설치돼 있다.
 
유방암을 이겨낸 낸시 클리프턴-호킨스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50달러를 주고 오래된 베이지색 다이얼식 전화기를 구입했다. 어린 시절 롱비치 집에서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모델이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였다.
 
“번호를 하나씩 돌리는 행위 자체가 치유가 된다. 비록 신호음은 들리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과는 언제나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알타데나의 힐링아트센터 정원에도 윈드폰이 있다.
 
LA타임스 인턴 기자인 시머스 보즈먼은 원래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아버지를 위해 전화기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대형 산불로 자신의 집까지 잃으면서 윈드폰은 가족뿐 아니라 산불 피해자와 상실을 경험한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그는 “이곳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라며 “마음속 이야기를 바람에게 그대로 전하면 된다”고 말했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윈드폰이 모두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리버사이드 마운트 루비두의 산책로에 설치됐던 한 윈드폰은 훼손돼 현재는 수화기 없이 전화기 본체만 남아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추모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심리 전문가들은 슬픔을 말로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애도 과정을 돕는다고 설명한다. 상대가 실제로 응답하지 않더라도 마음속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는 과정이 상실감을 받아들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지만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 한마디는 바람을 타고 어딘가에 닿을 것이라는 믿음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윈드폰 앞으로 이끌고 있다.

 

원문은 7월 7일자 ‘Wind phones offer a lifeline to the bereaved’ 입니다.   

글·사진=지나 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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