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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국 250주년, 왜 다시 ‘록키’ 인가

Los Angeles

2026.07.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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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Rocky)
무명 복서의 아메리칸 드림…200주년 희망 상징
영웅 서사 대신 '다큐멘터리' 택한 할리우드 변화
화려한 승리보다 끝까지 버텨내는 의지 기억돼야
‘록키’는 패배를 통한 역설적 승리의 이야기다. 3류 복서 록키가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에게 판정패하면서도 15라운드를 끝까지 버텨내는 서사를 통해, 제도와 권력에 실망한 당대 미국 사회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강력한 심리적 위로를 제공했다. [United Artists]

‘록키’는 패배를 통한 역설적 승리의 이야기다. 3류 복서 록키가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에게 판정패하면서도 15라운드를 끝까지 버텨내는 서사를 통해, 제도와 권력에 실망한 당대 미국 사회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강력한 심리적 위로를 제공했다. [United Artists]

1976년 1월 1일, 필라델피아의 한 복싱 경기장.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는 조지 워싱턴의 가운을 벗어던지고 성조기 타이즈 차림으로 등장한다. 삼류 복서 록키 발보아는 그 화려한 퍼포먼스 앞에서 그저 묵묵히 글러브를 낀다. 어떤 말도 더 필요 없다. 그리고 처절한 15라운드 끝에 그는 챔피언이 되지 못한 채 패배한다.
 
그러나 관객은 그 패배를 승리로 읽었다. 워터게이트와 베트남전으로 국가적 자존심이 무너진 나라에게, 영화는 거대한 위로 하나를 건넨 것이다. 이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끝까지 서 있으면 된다. 그 위로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한 사람의 처절한 몸짓으로 전해졌기에, 좌우 어느 진영도 쉽게 거부할 수 없었다. 누구도 록키에게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당시 할리우드는 ‘대부’와 ‘택시 드라이버’처럼 반영웅과 모호한 결말이 지배하던 ‘뉴 할리우드’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록키’는 의도적으로 정반대 길을 택했다. 복잡한 질문 대신 단순한 다짐을, 냉소 대신 희망을 들고 나온 것이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스타워즈’와 함께 할리우드가 다시 대중적이고 낙관적인 이야기로 회귀하는 분기점으로 꼽는다.
 
200주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자존심이 무너진 나라인 미국에게 그 단순함이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 되어주었다. ‘록키’는 처음부터 독립 200주년을 위해 기획된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단돈 100만 달러짜리 각본이 박스오피스 1위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는 과정 자체가, 영화 속 록키의 서사와 정확히 겹쳐졌다. 무명이 정점에 오르는 이야기는 스크린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그렇게 ‘록키’는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200주년이 원했던, 기회의 나라, 아메리칸 드림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몸소 실천한 70년대의 신화가 되어버렸다.
 
단역을 전전하던 무명의 실베스터 스탤론은 ‘록키’ 각본을 쓰기 직전에는 생활고에 시달렸고 반려견을 팔아야 했다. ‘록키’의 각본을 완성한 뒤 여러 제작사가 높은 금액에 각본만 사려 했지만, 스탤론은 자신이 주연을 맡는 조건을 끝까지 고수했다. [United Artists]

단역을 전전하던 무명의 실베스터 스탤론은 ‘록키’ 각본을 쓰기 직전에는 생활고에 시달렸고 반려견을 팔아야 했다. ‘록키’의 각본을 완성한 뒤 여러 제작사가 높은 금액에 각본만 사려 했지만, 스탤론은 자신이 주연을 맡는 조건을 끝까지 고수했다. [United Artists]

단역을 전전하던 실베스터 스탤론은 오디션에서 외모와 말투 때문에 주연감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록키’ 각본을 쓰기 직전까지도 생활고에 시달렸고 반려견을 팔아야 했다. ‘록키’의 각본을 완성한 뒤 여러 제작사가 높은 금액에 각본만 사려 했지만, 스탤론은 자신이 주연을 맡는 조건을 끝까지 고수했다.
 
독립 250주년을 맞이한 할리우드 영화계의 패러다임은 200주년과 판이하게 다르다. 250주년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극장용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신작 ‘영 워싱턴(Young Washington)’은 건국의 아버지를 영웅의 좌대에서 끌어내려, 도덕적 딜레마에 시달리는 한 청년의 얼굴로 되돌린다. 완성된 동상이 아니라 성장기의 흔들리는 인간을 보여주는 쪽을 택한 셈이다.
 
다큐멘터리 ‘Patriots and Plotters’는 흑인 정보원과 유대인 이민자처럼 역사서의 각주에만 남아 있던 인물들을 전면에 배치한다. 국가 예찬이라는 서사를 답습하는 대신, 서로 다른 인종과 계층, 이민의 경험이 교차하는 다양성의 모자이크를 통해 미국 건국 신화의 의미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넷플릭스의 5부작 다큐시리즈 ‘The American Experiment’은 완성된 신화가 아니라 여전히 수정 중인 ‘미완의 실험’으로서의 역사를 차분히 복기한다.
 
영화 배급의 무게 중심이 극장에서 안방의 작은 화면으로 옮겨간 산업적 이유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해외 흥행과 프랜차이즈에 편중된 지금의 극장 산업 구조에서 무명 배우의 각본 한 편이 시대의 얼굴이 되던 ‘록키’식 신화는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미국 독립전쟁이라는 로컬한 소재는 대중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최근의 갤럽 조사는 1976년식 처방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이 ‘매우 애국적’이라는 응답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250주년 기념행사들조차 출연 예정 아티스트들이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줄줄이 발을 빼고 있다. 국민 전체가 같은 시간에 같은 화면을 보며 함께 환호하던 1976년의 경험은, 수천 개의 채널과 커뮤니티로 쪼개진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구조적으로 재현되기 어렵다.
 
200주년과 확연하게 다른 또 하나의 현상은 축제 분위기의 결여다. 건국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시선과, 그 뒤에 가려진 인종차별과 원주민 박해의 원죄를 들춰내려는 수정주의적 시선이 팽팽하게 맞선다. 애국의 톤을 높이면 프로파간다라는 비판이, 비판의 칼날을 세우면 반미국적이라는 공격들과 맞서야 한다. 할리우드는 확성기를 내려놓고 고증과 인물 탐구로 물러서는 가장 안전한 방식인 다큐멘터리로 돌아섰다.
 
1976년의 ‘록키’는 단일한 국가적 신화를 자축하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2026년의 할리우드는 ‘록키’와 같은 신화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시대로 변화했다. [United Artists]

1976년의 ‘록키’는 단일한 국가적 신화를 자축하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2026년의 할리우드는 ‘록키’와 같은 신화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시대로 변화했다. [United Artists]

그럼에도 이 변화를 단순한 퇴보로 읽을 필요는 없다. 단일한 신화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다원적인 목소리들이고, 집단적 환호가 사라진 자리는 개별적이고 깊은 사유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록키’가 그 시절 미국에 필요했던 위로였다면, 다양성의 모자이크와 차분한 다큐멘터리들은 지금 이 시대가 스스로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처방이자 치유의 길이다.
 
250주년 영화계의 ‘조용함’은 창작력의 빈곤이 아니라, 통합된 단일 서사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미국 사회의 현재 상태를 비추는 결과이다. 그래서 지금 ‘록키’를 다시 꺼내 보는 일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오늘의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 보기에 가깝다. 50년 전 그 영화가 보여준 것은 국가가 기획한 거대한 신화가 아니라, 누구의 기대도 받지 못한 한 사람이 그저 버텨내는 모습이었다.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성찰의 시대에 들어선 지금, 250주년의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축제나 모두를 하나로 묶는 통일된 서사가 아니다.
 
누구의 기대도 받지 못한 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가장 작은 단위의 회복, 바로 50년 전 ‘록키’가 보여준 시대의 위로였다. 5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다시 ‘록키’를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은 지금 필요한 것은 그저 한 사람이 끝까지 버텨내는 모습이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한 칸씩 오르던 록키의 뒷모습은 화려한 승리보다 끝내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의지였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사라진 뒤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끝까지 계단을 오르던 록키의 그 뒷모습일 것이다.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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