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마약에 빠진 의사들…강남 피부과, 허위 처방전만 4331장
중앙일보
2026.07.08 21:26
강남경찰서가 압수한 의료용 마약류. 강남경찰서 제공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의료진이 외국인 환자 명의를 도용해 허위 처방전 4331장을 만들고 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 12만1849정을 불법 유통·투약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강남구의 한 피부과와 약국이 연루된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사건을 수사해 의사와 약사 등 13명을 지난달 말 검찰에 송치했다고 9일 밝혔다.
피부과 원장 A씨와 소속 의사 B씨는 지난달 25일 구속 송치됐으며, 허위 또는 부실한 처방전에 따라 의약품을 판매한 약사들과 병원·약국을 연결한 약국 직원 등도 불구속 송치됐다.
이들에게는 마약류관리법과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수면제 계열 향정신성의약품에 중독된 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초까지 외국인 환자 3400여명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허위 처방전 4331장을 작성했다.
이들은 이를 이용해 졸피뎀 등 향정신성의약품 12만1849정을 약국에서 구입해 직접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수면제 부작용으로 약물을 계속 복용하기 어려워지자 병원 금고에 보관 중이던 프로포폴까지 몰래 빼내 투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남경찰서가 적발한 의료용 마약류 허위 처방전. 강남경찰서 제공
경찰은 A씨와 B씨의 주거지에서 병원에서 빼돌린 프로포폴과 졸피뎀 등 다량의 의료용 마약류를 압수했다.
약사들은 타인 명의의 부실한 처방전이 대량 제출됐는데도 진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약품을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의약품은 처방전 없이 시가보다 비싼 가격에 대량 판매된 정황도 확인됐다.
수사는 외국인 환자가 자신의 명의로 향정신성의약품이 처방된 사실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외국인은 다른 병원을 방문해 처방을 받으려다 이미 동일 약품 처방 이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명의 도용을 의심해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진료를 마친 뒤 출국하는 외국인 환자들의 특성을 악용해 중복 처방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범행으로 보고 약 6개월간 수사를 벌여 의료진과 약국 관계자들의 범행을 밝혀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의료 목적이 아닌 마약류 소지와 사용, 투약을 금지하고 있으며, 의사도 치료 목적이 아닌 자가 투약은 허용되지 않는다.
경찰은 일부 의료인이 다른 의사를 통한 처방이나 환자 명의 도용 등으로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 확보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의료용 마약류 유통 전반에 대한 수사를 계속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재홍([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