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8일(현지시간) 한국에서 7일자로 시행된 정보통신망법(정통망법) 개정안에 대해 “과도한 콘텐트 규제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국무부는 특히 “한국은 미국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며 정통망법이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로 활용될 가능성에 대해 경계감을 드러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해 12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의 반대 속에 통과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무부는 이날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정통망법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을 요구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통망법은 허위·조작 정보을 유통하는 것에 대한 징벌적 책임을 묻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고의적 허위 또는 조작 정보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가중 손해배상 책임을 묻고, 이를 반복적으로 유통할 경우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를 놓고 국내에선 ‘가짜뉴스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른바 ‘입틀막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미 국무부는 해당법이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우리는 개정안 시행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주요 이해관계자들, 특히 미국 테크 기업과의 지속적인 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롭고 개방된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무부가 미국 테크 기업과의 긴밀한 소통을 요청한 배경은 정통망법이 미국 회사들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라 로저스 미국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이 지난 4월 1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정통망법은 일일 이용자 수 100만명 이상인 플랫폼 사업자에게 허위조작정보 유통을 막기 위한 의무를 부여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규제 대상 9곳을 지정했는데, 여기엔 구글·메타·X(옛 트위터) 등 미국 업체와 틱톡 등이 포함돼 있다.
국무부는 지난해 12월 정통망법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도 공식 입장을 내고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며 “한국은 디지털 서비스에 불필요한 장벽을 둬서는 안 되고, 미국은 검열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지난 4월 사라 로저스 공공외교 담당 차관이 방한해 임상우 외교부 공공외교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도 이같은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화 주미대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특파원과의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일각에선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일으킨 미국회사 쿠팡을 둘러싼 논란이 한·미 양국 간의 통상 및 외교·안보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된 가운데, 정통망법이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정부의 우려 표명에 외교부 당국자는 9일 “해당 법안(정통망법)은 국내외 기업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에 따른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다”며 “동 법안의 취지 및 내용을 미국 등 주요 이해관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동 법안 시행 과정에서 미측과 필요한 소통을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강경화 주미 대사는 8일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진행한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쿠팡 사태와 관련 “한·미 관계에 부담되지 않게 안정적으로 관리해가자는 공감대가 양국 정부 간에 형성돼 있다”며 “미국 측과 지속적 협의를 통해 우리 정부의 입장을 분명하고 일관되게 설명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