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결속의 장이 될 것 같았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이 오히려 내부 갈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백만 인파를 동원해 세 과시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대통령 등 협상파 고위 인사들이 강경파 군중에게 물리적 공격을 당하는 등 내홍이 더 부각됐다는 것이다.
6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장례 행력이 수도 테헤란의 아자디 광장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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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200만 추모객…친이란 세력 총집결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일주일 간 이란·이라크 5개 도시를 도는 일정으로 진행되는 하메네이 장례행사는 8일(현지시간) 이라크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와 카르발라 일대에서 절정에 달했다. WP는 “이라크에서 약 200만 명의 추모객이 몰렸고 장례 행렬 곳곳에 하메네이의 대형 초상화와 함께 대미 보복을 다짐하는 검은 깃발이 나부꼈다”며 “친이란 민병대인 인민동원군(PMF)은 장례 행렬 전 구간에 병력을 배치해 경비와 인파 관리를 맡았다”고 전했다.
시내 확성기에선 지난해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육성 연설도 울려 퍼졌다. 이란의 한 당국자는 WP에 “이번 장례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9일(현지시간) 새벽 이라크 카르발라 이맘 후세인 성지 밖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의 관이 운구되자 추모객들이 관을 만지려 몰려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 내 장례행사도 체제 결속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지난 4일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공식 추모 행사에선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 등 고위 인사들이 나란히 하메네이를 추모했다. 권력 승계가 혼란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내보내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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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행렬서 대통령·외무장관 봉변…폭발한 강경파 민심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8일 “미국과의 협상을 지지하는 세력과 어떤 거래도 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파 사이의 균열이 장례 기간 더 깊어졌다”고 지적했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지난 6일 장례 행렬에 참석했다가 강경파 지지자들에게 습격당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이들 군중은 페제시키안 대통령에게 “협상파에 죽음을”이라고 외치며 달려들었다. 경호원들은 이들을 밀쳐내면서 휘청거리는 대통령을 호위했다.
대미 협상을 주도해 온 압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도 같은 날 타깃이 됐다. 이라크 시아파 성지를 방문한 그는 순례객들의 거센 야유를 받은 데 이어 장례식장 인근 골목으로 쫓기며 돌 세례까지 받았다고 NYT는 전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하메네이 장례행사에서 강경파 군중들에 둘러싸여 공격 받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대미 협상에 나선 갈리바프 의장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졌다. 이란 국영방송은 지난주 갈리바프 의장의 사전 녹화 인터뷰를 내보내던 중 해외 동결자금 해제와 휴전 합의 설명 등 민감한 협상 관련 대목에서 방송을 끊었다. 공식적인 중단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강경 성향이 강한 국영방송 내 검열 때문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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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재공습에 강경파 득세
강경파가 이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은 미국의 반복되는 공습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 장례기간인 8일에도 미국의 공습이 이뤄졌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튀르키예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이란과 합의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믿을 수 없다”는 강경파의 정서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협상을 추진해온 페제시키안 대통령조차 8일 “미국이 속임수를 쓰며 장애물을 만들고 있다”고 미국을 성토했다.
협상파도 물러서지 않았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아들이자 보좌관인 유세프 페제시키안은 SNS에 글을 올려 미국과 대화 노선을 옹호했다. 그는 아버지와 정부 인사들을 겨냥한 강경파 공격을 규탄하며 “이 분노가 우리 관리들을 향하고 국내 단합과 이슬람권 전체의 단합을 겨냥한다면 그건 적의 도구가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이라크 나자프 국제공항에서 열린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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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냐 외교냐…모즈타바 선택이 변수
결국 노선 투쟁의 향방이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에 달렸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 절차 내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일부 강경파는 모즈타바의 공개 등장이나 육성 메시지가 나오기 전까지 대미 외교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모즈타바가 협상파와 강경파 중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느냐를 두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NYT는 이란 지도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전쟁 재개와 외교적 관여 중 어느 쪽으로 갈지 결정되지 않은 채 내부에서 책임 공방이 한창”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들 당국자는 “미국이 추가 공격에 나설 경우 이란이 강력히 보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