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걸' 스틸컷. '슈퍼걸'은 '슈퍼맨'의 사촌 카라 조엘이 우주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사진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DC코믹스의 대표작 ‘슈퍼맨’의 스핀오프 ‘슈퍼걸’의 최신 실사화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며, 워너브러더스의 새로운 DCU(DC유니버스)재건 과정에 ‘노란불’이 켜졌다.
지난 6월 넷째주 전 세계에서 기대감 속에 개봉한 ‘슈퍼걸’은 평면적 서사와 아쉬운 액션 등으로 혹평을 받으며 개봉 첫 주 북미 오프닝 스코어가 3800만 달러(약 572억원)에 그쳤다. 1억 달러가 기본이라는 DC 히어로물의 ‘이름값’을 못한 저조한 첫 주 성적이다. 그마저도 둘째 주말에는 매출이 76.8% 감소하며 흥행 실패를 사실상 확정했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국내에선 개봉 15일차인 8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14만명에 그쳤고, 박스오피스도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행성을 돌아다니며 약탈과 살해를 일삼는 우주 깡패 크렘과 맞서는 슈퍼걸. [사진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예상 손실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9일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슈퍼걸’ 수익은 현재까지 1억378만여 달러(약 1560억원)로 손익분기점(약 3억7500만 달러 추산)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예상 총 매출(극장 기준)을 고려할 때 워너브러더스가 떠안을 손실 규모는 1억2000만 달러(약 1806억원·할리우드 리포터)에서 2억4430만 달러(약 3678억원·영화평론가 댄 머렐)까지 예상된다.
DC와 마블을 오가며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등 히트작을 제조해 온 제임스 건 감독이 DC스튜디오 CEO로서 DC 세계관을 다시 쌓기 시작한 시점이라 더욱 뼈아프다. 이번엔 직접 메가폰을 잡지는 않았지만, 시장은 제임스 건 체제가 DC 세계관 ‘심폐소생’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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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감 극복’ 장벽 높은 히어로물
1959년 DC 코믹북에서 처음 등장한 ‘슈퍼걸’은 등장과 함께 큰 인기를 누렸던 여성 히어로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슈퍼맨의 사촌인 카라 조엘(밀리 알콕)로, 파괴된 크립톤 행성의 생존자다. 행성 파괴 당시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지구에 정착한 슈퍼맨과 달리 행성을 전전하며 술과 파티에 젖어 살다가, 지구 구원이 아닌 개인적 이유로 악당을 물리치게 된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에서 비켜난 이야기지만, 영화는 이상하게도 기시감이 든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영웅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 데다 매력적인 빌런의 부재, 캐릭터 설득 실패 등으로 몰입을 일으키지 못한 탓이다. 영화 자체만 봤을 땐 아주 못난 작품은 아니다. 실제로 관객 평가도 크게 엇갈린다. 태양의 색이 바뀔 때마다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행성들을 표현한 영상미도 뛰어나다.
‘2026 스타워즈 데이 인 코리아’가 열린 지난 5월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앞에 영화 '만달로리안과 그로구' 캐릭터를 활용한 높이 10m 조형물 '자이언트 그로구'가 설치돼 있다. [뉴스1]
‘슈퍼걸’의 실패는 비슷한 흥행 공식에 반복 노출돼온 관객의 ‘피로감’을 극복해야 하지 못한 결과다. 방대한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의 장벽이 높은 것도 프랜차이즈 히어로물 흥행의 장애물이다. 실제 최근 스타워즈, DC, 마블 등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연이어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고 있다. 올해 개봉한 스타워즈 ‘만달로리안과 그로구’는 막대한 굿즈 수익을 올리고 있는 ‘베이비 요다’ 그로구를 탄생시킨 디즈니플러스의 인기 시리즈 ‘만달로리안’의 후속작이다. 글로벌 박스오피스 3억2200만 달러(4860억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손익분기점 달성은 어려운 것으로 추정된다. 스타워즈의 고장 북미에서도 개봉 일주일 만에 ‘백룸’ ‘옵세션’ 등 초저예산 영화에 밀렸다. 지난해 개봉한 마블 최신작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도 손익분기점 돌파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6월 셋째주 개봉한 ‘토이스토리 5’는 1995년부터 이어진 픽사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지만, 시대에 맞춰 변주해온 메인 캐릭터와 서사가 관객을 성공적으로 설득했다. 현재 글로벌 매출 7억7488만 달러(1조1720억원)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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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도 하기 어려운 ‘이름값’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사진 CGV아트하우스]
유명한 감독도 ‘이름값’ 하기 쉽지 않다. 지난달 10일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디스클로저 데이’ 수익은 현재 2억1798만 달러(약 3290억원)로 손익분기점 돌파에 실패할 전망이다.
대신 예상을 깬 흥행작이 나오는 게 국내외 영화계의 공통된 현상이다. 올해 설 연휴에는 평단과 대중의 예상을 깨고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를 눌렀다. 지난해 일본에서 깜짝 흥행한 독립영화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야스다 준이치 감독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산이 많이 드는 영화는 안전한 기존 흥행 공식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도전을 하기 어려운 만큼 관객들이 기시감을 느끼기가 쉽다”고 말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특히 오래된 프랜차이즈들은 기존 팬들에게 기시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세계관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해야 한다”"며 “극장 영화 자체가 어려운데 극복해야 할 장벽도 높다"(제작자 입장에서도) 극장 영화가 성공할 거란 기대감이 많이 떨어지면서, 중소형 영화가 많아졌다”며 “의미 있는 스토리를 찾는 시도가 많아지면서 ‘세계의 주인’ 같은 성공 사례가 자주 눈에 띄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