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차이콥스키의 지음 폰 메크 부인

중앙일보

2026.07.09 08:02 2026.07.09 13:3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는 사랑. 그런 사랑이 실제로도 가능할까? 무척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음악의 역사에서 그런 희귀한 일이 있었다. 차이콥스키와 폰 메크 부인의 예술적 결속이 바로 그것이었다. 1877년부터 1890년까지 약 13년여 기간 동안 두 사람은 2600여통의 편지를 교환했다.

차이콥스키는 예민한 사람이자 극단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예술가적 감수성과 짝을 이루는 병적인 낯가림은 어머니를 잃은 충격에서 왔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는 단 한 사람을 잃은 차이콥스키는 은둔자 같은 정신세계를 가지게 되었다. 성공을 거둘수록 주목도가 커지고 공적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폰 메크 부인은 그와 닮은 사람이었다. 지켜보고 응원하고 최선으로 돕지만, 결코 곁에 있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매료된 그는 1877년부터 조건 없이 매년 6000루블의 연금을 작곡가에게 후원했다. 그런데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 그녀는 차이콥스키가 어떤 음악을 쓰는가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았다. 음악가와 인간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인간의 자질은 음악적 재능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더욱 놀라운 면모는 후원하게 된 뒤에도 결코 그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어쩌면 똑같은 ‘병’을 앓고 있었다. 이상을 향한 그리움을 버릴 수는 없지만, 그 그리움이 좌절될 때 오는 두려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앓는 병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영혼의 단짝처럼 서로 공감했다. 어쩌면 이 둘의 관계는 음악과도 닮았다. 시간과 거리, 채움과 사라짐을 삶 자체로 실행했기 때문이다. 음악도 듣는 이의 마음을 채워주지만, 울리기를 다하고 나면 미련 없이 몸에 스미듯 사라지지 않는가. 차이콥스키가 감사와 애정을 담아 폰 메크 부인에게 걸작 교향곡 4번을 헌정했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