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플랫폼에 연재되는 장르 소설을 통칭해서 웹소설이라고 부릅니다. 최근 웹소설계에 나타나는 특이 사항 중 하나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축구 선수 캐릭터가 부쩍 많아지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혼혈 이중국적 선수인데, 대뜸 현실의 옌스 카스트로프 선수를 연상시킵니다.
경우의 수 따져 32강 잇따라 탈락
대통령 특별지시로 축구협회 조사
월드컵 전후 연재, 인기 끈 웹소설들
선견지명인 듯 허구·현실 경계 흐릿
‘삼국지’도 당대에는 웹소설 취급
폄하가 능사 아냐, 인기 원인 살펴야
한국 국적을 선택한 독일 혼혈 옌스 선수와 가족. [중앙포토]
옌스 선수는 2003년생으로 아버지가 독일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어서 한국·독일 이중국적입니다. 정확하게는, 독일 단독국적이었다가 2025년 2월에 주독 한국영사관에 출생신고를 하면서 이중국적이 된 것. U-16부터 U-21까지 독일의 연령별 대표팀에서 계속 뛰었는데, 2025년 8월에 한국축구협회로 소속을 변경하고 9월에 22세의 나이로 성인 대표팀에 출전함으로써 FIFA 규정상 한국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영구 확정되었습니다.
한국 홀대하자 어머니의 영국 국적 선택 지난 5월 13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축구 천재인 줄 모르고 축구협회에서 쫓겨남’의 주인공 서은성은 한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입니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유소년 선수로 뛰어난 축구 재능을 폭발시키다가 한국 기업의 영국 파견직이었던 아버지가 한국으로 재발령이 남에 따라 17세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왔고, 한국에서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U-20 월드컵에 출전합니다.
조별 예선 3차전 영국전에서 0대 2로 지고 있는 상황, 국내 여론에 떠밀려 주인공을 대표팀에 발탁하기는 했지만 단 1분의 출전 기회조차 줄 생각이 없는 감독. 그러나 선수들의 갑작스러운 부상이 발생하는 바람에 주인공을 내보낼 수밖에 없게 되자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립니다. “들어가서 괜히 튀려고 하지 말고, 점유율이나 유지하면서 볼이나 돌려.”
하지만 주인공은 선수들을 설득해서 전술을 변경하고 2도움 1골의 활약을 펼쳐 역전승을 거두는데, 그러자 어이없게도 감독이 화를 냅니다. “근본 없는 ××가 외국물 좀 먹었다고 스타병 걸렸냐?! 감히 내 전술 지시를 씹고 맘대로 뛰어?!”
화가 난 감독은 16강전에서 주인공을 출전시키지 않았고 경기는 패배로 끝났습니다. 한 기자가 ‘서은성은 왜 뛰지 못했나’라는 기사를 올렸지만 축구협회는 기사를 삭제 조치하고 코칭스태프에 대한 항명 및 팀 분위기 저해를 이유로 주인공에게 국가대표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 처분을 내립니다. 분노한 주인공은 마침내 결심합니다, 영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영국으로 돌아간 주인공은 영국 국적으로 영국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을 펼칩니다.
이야기가 너무 작위적이고 상투적인 것 같나요? 하지만 이번 북중미 월드컵의 한국팀을 지켜본 뒤로는 쉽게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어이없기로는 소설보다 현실이 더한 것 같지 않나요?
이 소설의 주인공 서은성은 한국에서 청소년 대표로만 뛰었기 때문에 영국 국가대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현실의 옌스 선수는 영원히 독일 국가대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옌스 선수는 단 1경기, 딱 45분을 뛸 수 있었습니다. ‘선수단 내부 규율 위반으로 인한 징계’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 실제 내용은 어떤 걸까요?
지난달 21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회귀 후 아르헨티나로 귀화했다’에서는 판타지답게 주인공이 과거로 회귀합니다. 주인공 강레오는 2037년에 발롱도르까지 받은, 한 시즌에 100경기를 뛰면서 실점이 20점 이하인, 천재 골키퍼입니다. 하지만 그가 출전해도 한국팀은 월드컵에서 32강 탈락을 합니다. 주인공이 실점을 안 하지만 팀이 득점도 못 하기 때문에 조예선 3무승부 3위로 경우의 수를 기다리다가 운도 나빠서 2030년, 2034년 연이어 탈락합니다. 2038년에는 어쩌다 경우의 수가 들어맞아서 32강에 진출을 하고 32강 전도 주인공의 활약으로 승부차기에서 이기지만 주인공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16강 전은 9대 0으로 참패합니다. 이런 주인공을 국민들은 좋아하지만 협회의 높으신 분들과 국가대표 선배들, 기자분들은 엄청 싫어합니다. 주인공이 고분고분하지 않고 바른 소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 말씀을 몇 개 인용해 봅시다.
조별리그 남아공과의 경기에서 패한 후 망연자실한 표정의 한국 축구 대표선수들. [중앙포토]
“외국물 먹었다고 팀이 우스워?” “그 ×× 외국물 좀 먹었더니 협회 이사들 개무시하고! ××가 그동안 국가와 협회가 얼마나 많은 걸 해줬는데!”
“이영후 쓰라고? 강레오 이 ××, 선수 주제에 지금 감독 권한까지 건드리겠다는 거야? 외국물 좀 먹었다고 팀이 우스워 보여?”
“군대도 그냥 면제받은 ××가 군대 안 간 거 가지고 뭐라 한 거 가지고 아주 대놓고 꼽을 주네. 감히 기자가 쓴 성스러운 기사에 대꾸를 해?”
그분들이 강레오 죽이기에 나서서 온갖 비난을 합니다. 부상 후유증으로 사실상 은퇴 상태가 된 주인공은 차츰 선동당한 국민들에게까지 차가운 시선을 받기 시작합니다. 지독한 회의에 빠진 주인공은 아르헨티나로 가서 유소년 팀 코치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2025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회귀를 합니다.
회귀한 주인공은 학교를 자퇴하고 아르헨티나로 갑니다. 귀화하여 아르헨티나 국가대표가 되려는 것인데, 7월 6일 현재 소설 속 주인공 강레오는 아르헨티나의 CA알도시비 유스팀 선수로서 첫 경기를 하는 중입니다.
이 소설들을 두고 클리셰(뻔한 설정이나 대사)로 가득하다고 지적한다면 그 지적은 틀린 지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소설들을 가치 없는 것, 무의미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폄하해 버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클리셰를 경멸하며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 애쓰는 것 자체도 일종의 클리셰가 될 수 있습니다. 클리셰가 있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니, 이것을 클리셰의 진실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클리셰로부터 자유롭다는 것도 하나의 환상이 아닐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클리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가 한자문화권 고전문학의 대표적 예로 꼽는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등의 소설에도 클리셰가 가득합니다. 이 소설들은 처음부터 소설로 쓰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모습의 구비문학으로 전해지다가 나중에 그것들을 취합하고 정리하여 글로 옮긴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클리셰들이 섞여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웹소설을 폄하하듯이 옛날에는 이 소설들도 폄하의 대상이었습니다. 폄하는 물론이고 금지되기도 했죠. 마치 유해 식품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 소설들이 오늘날에는 고전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비슷한 모양새를 한 수많은 소설들이 있었고 그것들 중 다수는 나쁜 의미의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걸 가려내는 일인데 이 일이 무척 어렵습니다. 동시대에 그걸 가려내었던 옛 선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경우의 수를 따져 32강 진출을 기대했으나 좌절된 한국 축구 대표팀. [중앙포토]
허구보다 더 참혹해 보이는 현실 ‘회귀 후 아르헨티나로 귀화했다’를 보면 우리는 이번 월드컵 한국팀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선수들과 감독 및 코치, 그리고 축구협회에 관한 여러 소문들이 풍자적으로 환기됩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고, 또 정말 슬픈 것은 이 소설들 속의 허구보다 현실이 더욱더 참혹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축구 천재인 줄 모르고 축구협회에서 쫓겨남’ 6월 1일자 연재분을 보면 “대한축구협회의 부조리와 파벌 행정을 성역 없이 엄정 조사하라”는 대통령의 특별 지시가 내려옵니다. 이제 세계적인 선수가 된 주인공을 끝까지 음해한 협회의 거짓말이 폭로된 뒤 비난 여론이 들끓자 대통령까지 나선 것입니다. 6월 1일 당시에는 이 장면이 과장되고 작위적인 것으로 보였지만, 그로부터 3주 후, 현실의 한국팀이 조별 예선 탈락한 뒤인 6월 28일에 실제로 대통령의 지시가 나왔습니다.
웹소설 ‘귀화한 축구 천재가 세계를 휩쓺’의 이미지. [사진 성민엽]
또 다른 소설 ‘귀화한 축구 천재가 세계를 휩쓺’ 2025년 11월 25일자 연재분에서는 한국팀이 2034년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조3위로 32강 탈락을 하는데, 팀의 주장이며 팀 내 최고의 월드 클래스 선수이지만 팀에 헌신하다가 몸이 망가진 주인공이 협회의 음해로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쓴 채 온 국민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실망한 주인공은 교통사고로 죽은 뒤 과거로 회귀하여 독일로 귀화를 합니다. 조3위 32강 탈락이라는 현실의 결과를 일찌감치 맞혔는데, 소설 속 주인공과는 달리 현실의 월드 클래스 선수는 국민의 비난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이렇게 보다 보면 허구와 현실의 경계조차 흐려지며 혼란스러워집니다. 일단 작가들의 선견지명에 찬사를 보냅니다. 선수들의 국적 포기라는 이 클리셰에서 ‘사이다 효과’만 볼 게 아니라 경각심을 느껴야 하겠습니다.